‘여행산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회사가 떠오르는가? 하나투어나 모두투어? 스카이스캐너나 플라이트그래프? 아고다나 부킹닷컴? 아니면 야놀자나 여기어때? 이 중 하나를 답했다면 당신의 여행산업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대형 전시장에서 열리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여행 박람회는 매년 문전성시를 이룬다. 해외 각국 관광청에서 홍보 부스를 차려 알리고, 대륙별 부스에서는 다양한 초특가 여행상품 예약이 이뤄진다. 질주하는 여행산업의 상황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지난해 해외 출국자는 약 2650만명, 2238만명이었던 2016년보다 18% 정도 늘었다. 2015년 이후 매년 15~ 20%씩 해외 출국자가 늘고 있는데 올해는 30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연간 해외여행자가 1500만명 정도인 점과 비교하면 국내의 해외 출국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연합뉴스패키지여행 위주였던 여행산업이 개별여행 위주로 바뀌고 있다.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는 여행객들.

해외 출국자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여행산업도 꾸준히 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속을 들여다보면 여행사들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해외 온라인 여행사나 국내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들에 치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여행사들이 패키지여행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개별여행 시장에서는 외국 온라인 여행사(OTA:Online Travel Agency)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개별여행의 두 축인 항공권과 숙박 예약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가 최근, 상반기 해외여행자 2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외국 온라인 여행사의 항공권 예약 점유율은 27.2%로 19%인 국내 여행사를 앞섰다. 숙박 예약 점유율은 69.5%로 국내 여행사를 완전히 압도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도 국내 여행사들은 고전 중이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발표한 7월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숙박·항공 앱 사용자 수를 보면 ‘야놀자’가 198만명, ‘여기어때’가 142만명으로 1·2위를 차지했다. 사용자 수가 72만명인 하나투어와 49만명인 모두투어를 둘 다 큰 격차로 앞섰다. 단순히 숙박업소를 예약하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로 보았던 업체들이 국내 1·2위 여행사를 제친 것이다.

이렇게 여행산업에 변화가 생긴 것은 트렌드가 급격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해외여행 수요는 대기업의 해외출장이었다. 이를 대행해주던 여행사들이 여행산업의 선두에 있었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패키지여행을 제공하는 여행사들이 이들을 앞서기 시작했다.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인 ‘야놀자’와 ‘여기어때’의 광고. 두 회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여행산업은 다시 변하고 있다. 일단 패키지여행 위주였던 것이 개별여행 위주로 바뀌고 있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가 발표한 ‘주례 여행 행태 및 계획 조사’의 2018년 상반기 분석 자료를 보면 상반기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 중 개별여행자는 59.3%였고 단체 패키지여행자는 33.7%였다(에어텔 패키지는 7.0%).

여기에 또 하나 변수가 생겼다. 바로 모바일이다. 다양한 예약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여행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항공과 숙박과 액티비티(여행지의 체험 프로그램)로 분해되어 각각 발전했다. 특히 강력한 검색 기술을 보유한 외국계 온라인 여행사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마치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선점하듯 여행도 외국계 온라인 여행사들이 플랫폼을 선점했다.

항공, 숙박, 액티비티 예약 분야 가운데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은 액티비티다. 올여름 국내에서도 이 시장을 놓고 대표적인 O2O 서비스 업체인 야놀자와 여기어때가 격전을 펼쳤다. 소비자들도 아이돌 그룹 EXID 하니와 신동엽이 등장하는 두 회사의 광고를 보며 이 전쟁을 관전할 수 있었다.

테마파크나 워터파크 입장권 그리고 수상레저나 익스트림 스포츠 체험권을 주로 판매하는 액티비티 예약을 위해 야놀자는 올해 초 레저큐를 인수하고 시스템을 구축했다. 야놀자보다 일주일 먼저 서비스를 오픈한 여기어때는 ‘액티비티 최저가 보상제’를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업계는 국내 액티비티 시장의 잠재적 규모를 3조원 정도로 추산한다.

액티비티 예약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앱은 클룩(KLOOK)이다. 모건스탠리 출신 동료 3명이 만든 클룩은 올해 말 거래액이 10억 달러(약 1조1280억원)에 달하리라 예측한다. 현재 클룩은 전 세계 16개 도시에 지사를 운영하고 5만 가지 이상의 액티비티 상품을 판매한다. 한국에도 지사를 두고 에버랜드 등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클룩과 비견될 수 있는 국내 액티비티 전문 예약 앱으로는 야놀자와 여기어때 외에도 마이리얼트립과 와그(WAUG) 등을 꼽을 수 있다.

‘패키지 예약’ 꿈꾸는 플랫폼 구축

여행산업이 이렇게 분해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다시 ‘재결합’ 중이다. 항공권 예약, 숙소 예약, 액티비티 예약이 각자 경쟁하고 있지만 이들 서비스는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예약 서비스를 지향한다. 마치 항공(교통), 숙박, 액티비티, 식사 등 여행의 모든 요소를 결합해 패키지여행을 만들었듯 한곳에서 예약이 가능한 ‘패키지 예약’을 꿈꾸는 것이다.

해외 온라인 여행사도 다양한 서비스를 한곳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수직 계열화’하고 있다. 대표 기업이 바로 익스피디아다. 호텔스닷컴, 트리바고, 오르비츠, 이부커스, 카렌탈스닷컴, 워티프, 핫와이어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해 여행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예약 플랫폼을 구축했다.

흔히 자동차산업을 종합기계산업이라 부르는데 여행산업은 라이프스타일 종합산업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취향을 분석하고 이를 소비로 이끌기 위한 기술이 발전되어왔다. IT 산업에서도 예약 애플리케이션이 최전선에 있다.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경쟁적으로 IT 연구개발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데, 특히 야놀자는 연구개발 인력 100여 명을 충원해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아직 매출액은 클룩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여행산업 수직 계열화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남아 숙박 예약 애플리케이션인 젠룸스를 인수해 해외시장 진출에 나섰다. 국내에서 노하우를 쌓은 숙박 예약 모형을 동남아 시장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온라인 여행사 ‘라쿠텐 라이풀 스테이’와도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급속하게 외국 온라인 여행사 위주로 재편된 여행산업에서 야놀자 등 국내 회사들이 영토를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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