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일본에서는 큰 선거가 두 건 치러졌다. 9월20일에 자민당 총재 선거를, 9월30일에는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를 치렀다. 오키나와 지사 선거는 8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나가 다케시 지사의 후임을 뽑는 선거였다.

고 오나가 지사는 후텐마 미군 비행장의 나고 시 헤노코 이전과 헤노코 미군 기지 신설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그는 지난 6월24일, 73번째 맞는 오키나와 전투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의 날’에,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정세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아시아의 긴장 완화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7월28일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 승인 철회를 표명한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한반도 비핵화와 긴장 완화를 위한 북·미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20년도 더 전에 결정된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여전히 강행하는 정부의 처사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라며 재차 비판했다.


ⓒEPA9월30일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 당선된 다마키 데니 후보(가운데)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 중단과 후텐마 기지 폐쇄 및 반환을 주장했다.

그래서 아베 정권에게 오키나와 지사 선거는 매우 중요했다. 자민당 고위 간부들을 대거 오키나와로 보내는 등 총력을 기울였는데도 선거에서 크게 졌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오나가 전 지사의 뜻을 이어받아 헤노코 신기지 건설 중단과 후텐마 기지 폐쇄 및 반환을 요구하는 다마키 데니 후보를 선택했다. 9월10일 먼저 치러진 나고 시의회 선거에서도 후텐마 기지 이전 반대파가 과반을 차지했다. 일본 정부가 계속 무시하고 있는 오키나와 현민들의 선택은 이번에도 ‘공존과 평화’였다.

오키나와는 일본 국토 면적의 0.6%밖에 안 되지만 주일 미군 전용 시설의 74%가 집중되어 있다. 가데나 기지를 축으로 하는 오키나와의 미 공군은 한국전쟁과 깊은 관계가 있다. 가데나 기지, 미군 후텐마 비행장, 우루마 시의 화이트 비치 지구(주일 미 해군 항만시설)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뿐 아니라 유엔군 기지이기도 했다.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는 한반도에서 미군 작전, 특히 최근에는 정찰기 운영에서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오키나와인들은 중앙정부에 일관되게 오키나와의 기지 부담과 이로 인한 인권침해가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이고 구조적 폭력이라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기지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만들기에 힘을 쏟아, 2017년 처음으로 오키나와를 찾은 관광객 수가 하와이를 찾은 관광객 수를 웃돌았다. 꾸준히 관광 수입을 늘려 오키나와 경제에서 기지 의존도는 5%밖에 안 된다.

아베 정권은 여전히 오키나와에 냉전 구조를 강요한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된 6월12일에도 오키나와 현에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필요한 흙과 모래 투입을 통지했다. 8월28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해 채택된 2018년 〈방위백서〉에서도 북한은 여전히 ‘위협’이다. 북한의 위협 때문에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필요하다며 오키나와의 희생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 구축은 북한이라는 위협의 축소, 나아가 소멸을 의미한다. 후텐마 비행장을 계속 유지하거나 헤노코에 기지를 확장·신설해야 할 명분이 없어진다. 오키나와인들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반기는 이유다.

ⓒEPA9월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선 연임에 성공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나 핵 개발이라는 ‘북풍’을 최대한 활용하고 ‘북한 위협론’을 정권의 위기 때마다 조성해온 아베 정권은 ‘위협’이나 ‘적’이 아닌 북한을 상상하지 않는다. 아베 정권은 최근까지도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압력이라고 주장해왔으며,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앞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만 거론했다. 일본 언론 대부분의 논조도 정부 견해와 다를 바 없다. 언론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한계나 미비한 부분만을 강조해 회담 자체를 부정적 논조로 전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하는 보도는 드물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일본인들 또한 북한을 위협이나 적으로만 여긴다. 9월 평양 공동선언 후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1945년 8월 이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그리며 눈물 흘렸을 일본인 이산가족과 1959년 말부터 ‘북송’되어 이산가족이 된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을 떠올리지 못한다. 북한에서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의 유해를 보며 북한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의 유해를 상기하지 못한다. 비인도적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만 초점이 맞춰진 시야를 일본이 자행한 식민지 지배의 역사로 확장하지 못한다. 북한과 한반도의 비핵화가, 유일한 피폭 국가인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핵 군축과 핵 비확산을 실행할 기회가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 독재정권 지원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9월20일 아베는 3선 연임에 성공

9월20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겼다. 3선 연임에 성공한 아베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제2차 아베 정권이 시작된 201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5년8개월에 새 임기 3년을 더하고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의 1년까지 포함하면, 아베는 무려 10년을 집권하는 일본 역대 최장기 총리가 된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깊이 있는 정책 논쟁을 기대하거나 세간의 관심이 뜨거울 일은 없었다. 1996년 중의원 선거부터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중의원 선거에서 리더나 정책이 정해지는 데다 이번 선거는 일찌감치 현직 아베 총리의 승리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국회의원 투표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당원들로부터 55%의 지지를 받았다.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와 당원들의 55% 지지 간 격차가 논란이 되었지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선거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공존과 평화를 선택한 오키나와 지사 선거 결과도 받아들일 것인가? 아베 총리는 10월1일 “정부는 선거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오키나와의 진흥 그리고 기지 부담 경감을 위해 노력해가겠다”라고 밝혔다. 앞선 9월26일 유엔 연설에서는 북·일 국교 정상화 의지도 공식화했다. 오키나와인들은 이 말이 ‘립서비스’가 아니길 바라고 있다. 스가 관방장관의 말대로 선거에선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면, 아베 정권은 오키나와 지사 선거 결과를 존중해야 하고 오키나와인들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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