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왜 생겨났을까요? 다윈이 진화론을 집대성하고 인류도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조상이 있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다윈은 인류의 시작점을, 다른 유인원 계통과 비교해 도드라지는 인류의 독특함에서 찾았습니다. 인류의 독특함을 인류가 기원한 이유로 본 거죠. 다윈은 인류의 독특함을 큰 머리, 두 발 걷기, 도구 쓰기, 작은 치아로 보았습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은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패키지를 이루었습니다. 두 발로 걸으니까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운 두 손을 이용해서 도구를 만들고 쓰게 되었고, 도구를 만들고 쓰기 위해서는 큰 머리가 주는 지능이 필요했고, 도구를 쓰면서 큰 치아가 필요 없게 되어 치아가 작아졌다는 가설입니다.

여기서 가장 크게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도구를 만들고 쓰는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문화’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낸 것이 문화라는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인간이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내면서 가장 위대한 생물체로 군림하고, 동시에 생물적인 몸을 뛰어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20세기 초반 인류의 조상으로 군림한 호모 에렉투스는 이러한 틀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AP Photo2007년 8월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 자연사박물관이 공개한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3차원 입체 모형.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발견된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도구도 쓰지 않고, 머리 크기도 작았고, 치아는 그다지 작지 않았습니다(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종명은 어렵지만 ‘루시’라는 고인류 화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어쩌면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최초의 인류가 보통 유인원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니 말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인간다운 부분은 오직 하나, 두 발로 서서 걸었다는 점입니다. 인간처럼 두 발로 걷기 위해 필요한 특징이 뼈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골반은 위아래로 짧고 옆으로 휘둘러 감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인원의 골반은 위아래로 길고 앞뒤로 납작합니다. 최초의 인류는 무릎 관절 모양에서도 두 발 걷기를 했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게다가 화산재층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은 의심할 바 없이 두 발 걷기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두 발 걷기는 엄지발가락 모양에서 뚜렷이 나타납니다.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보다 크고, 다른 발가락과 같은 방향입니다. 손가락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엄지손가락은 두툼하지만 다른 손가락보다 짧고, 다른 손가락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으니까요.

다윈이 이야기했던 두 발 걷기, 큰 머리, 작은 치아, 도구의 제작과 사용이라는 패키지가 풀어지고 두 발 걷기만 남았습니다. 문화는 인류의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두 발 걷기를 제외하고는 인간다운 점이 없었던 최초의 인류에게서 오웬 러브조이는 새로운 기원설을 내놓았습니다. 1981년에 유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Origin of Man(인류의 기원)〉이라는 논문은 곧 고인류학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발표가 되었습니다.

‘러브조이 가설’, 교과서에 실리긴 했지만…

 

 

 

ⓒKent State University/div〉미국 켄트 주립대학 오웬 러브조이 교수(위)는 1981년 논문 을 발표했다.

 

러브조이는 인류 ‘성공’의 비밀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었습니다. 여기에서 성공이란 개체 수의 증가입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성공은 자신의 유전자를 많은 수의 자손에게 남기는 일이니까요. 인류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했습니다. 인류의 수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인류와 같은 동물들은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없습니다. 자손을 남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낳기에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수많은 새끼를 낳고 그중에 몇몇이 성공적으로 어른이 되어 번식하는 전략입니다. 또 하나는 키우기에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몇 안 되는 새끼를 낳고 엄청난 공을 들여서 어른으로 만들어내고 번식하게 합니다. 유인원은 키우는 일에 정성을 쏟습니다. 한 번에 한 마리만 낳습니다. 그리고 키우던 새끼가 얼추 자기 앞가림을 할 때가 되어야 또 낳습니다. 그래서 침팬지의 경우 터울이 4~5년 정도로 길고 평생 많은 수의 새끼를 낳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인원은 성공하기 힘듭니다.

인간은 어떨까요? 키우는 일에 가장 큰 노력과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인간은 키우던 아이가 얼추 자기 앞가림을 할 때까지 동생을 보지 않는다면 평생 몇 명 낳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성공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인간이 지구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수적 증가는 농경이 시작되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러브조이는 인류가 머릿수로 승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인류 성공의 비밀이며, 인류의 기원이라고 보았습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겨우 한 명씩 한 명씩 키우는 인간이 어떻게 머릿수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을까요? 한 번에 한 명 이상의 아이들을 키우면 됩니다. 러브조이는 해답을 성별 분화에서 찾았습니다. 남자가 먹을거리를 구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여자는 먹을 것을 구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온전히 아이를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여 몇 명의 아이를 동시에 키울 수 있습니다. 남자는 왜 열심히 먹을거리를 구하여 집으로 돌아올까요? 구한 먹을거리를 다른 여자에게 줌으로써 환심을 사고 아이를 낳게 할 수도 있을 텐데요. 남자가 열심히 구한 먹을거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여자는 수를 씁니다. 항상 섹스가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해둔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물들은 항상 섹스할 수 있지 않습니다. 발정기·가임기가 맞물려서 그 시기에 전폭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새끼를 치고, 그 이외의 기간에는 섹스에 관심이 없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발정기·가임기를 뛰어넘어 언제든 섹스할 수 있게 되려면 언제가 가임기인지 모르는 편이 상책입니다. 알고도 속이는 것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편이 쉽지요. 그래서 인간 여자는 자신의 배란기가 언제인지, 가임기가 언제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가임기가 언제인지 모르므로 언제든지 섹스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남자는 그 여자와 그 여자가 낳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계속 가져다주면서 부양하는 모습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설명이 러브조이 가설입니다.

러브조이에 따르면, 남자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여자가 정해지면서 다른 유인원에게서 나타나는 수컷끼리의 경쟁이 줄어들었습니다. 집단의 전체 수컷 수에 비해 가임기 암컷에 접근할 수 있는 수컷의 수가 적을수록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두 마리 수컷이 전체 암컷을 독과점하는 고릴라 세계에서의 경쟁은 가장 치열하지요. 수컷끼리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몸집이 큰 수컷이 우위를 점합니다. 암컷-수컷의 몸집 차이가 크면 수컷끼리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 순위 다툼을 통해 누가 암컷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지 결정해놓는 고릴라는 수컷의 몸집이 암컷에 비해 평균 2배 이상 큽니다. 그에 비해 서로 연대를 이루는 침팬지 수컷은 눈에 보이는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침팬지의 수컷은 암컷과 몸집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인간도 두 성별의 몸집 차이가 평균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남자마다 여자가 있으므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연대를 한다고 러브조이는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류는 몸집 성차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발 걷기를 중심으로 핵가족, 일부일처제, 성별 분업으로 이루어진 패키지를 인류의 기원으로 제시한 러브조이 가설은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여자를 도와서 육아에 참여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증거도, 여자와 남자가 한 쌍을 이루어 만든 핵가족이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경제활동을 하는 여자들도 많습니다. 성별 간 몸집 차이가 반드시 수컷끼리의 경쟁 정도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몸집 성차가 작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성별 분업을 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아이를 돌보는 역할 분담이 진화의 숙명적인 결과처럼 그렸지만, 사실은 과거를 현재 사회의 렌즈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어쩌면 가장 크게 비판할 지점은 보편적인 ‘인류의 기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내용은 ‘남자의 기원’이라는 점입니다. 러브조이의 논문 제목인 ‘Origin of Man’에서 ‘man’은 남자가 아닌 인류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쓰인 그대로 남자의 기원입니다. 남자 중에서도 ‘가장으로서의 남자’를 보편적인 인류의 기원으로 제시했습니다. 러브조이 가설 속에서 최초의 인간다움인 두 발 걷기를 하는 주체도,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문화의 주체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진화의 주체도 남자입니다. 여자는 남자가 가져다주는 식량을 대가로 섹스를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역할입니다.

러브조이 가설이 실린 논문에는 다른 암컷들과 달리 인간 여자는 특이하게 “섹스에 대해 지속해서 긍정적인 상태(conti-nually sexually receptive)”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고 고인류 화석 ‘루시’를 발견하여 유명한 도널드 요한슨의 개인적인 소견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끼리끼리’ 통하는 게 있음을, 서로 눈을 찡긋하면서 아는 사람만 아는 게 존재함을 슬쩍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러브조이 가설은 쉬운 비난과 가십거리를 선사합니다. 1980년대에 레이건 정부와 함께 두드러진 미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의 기원 모델로 진지하게 교과서에 실리는 러브조이 가설에 주목한 이유는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류의 일부를 지워낸 전통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작별해야 할 전통입니다.

 

기자명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