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곳이다. 500년 전 포르투갈인들이 항해 도중 젖은 짐을 말리겠다며 이곳에 내렸다가 눌러앉은 게 오늘날 마카오 역사의 시작이다. 지금은 엄청난 카지노 산업을 기반으로 1인당 GDP가 세계 3위인 나라이기도 하다. 볼거리도 도시 크기에 비하면 많다. 단일 그룹으로 묶여 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23개나 된다. 이 23곳 유산을 4~5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으니 어느 곳보다 발품 대비 효율도 높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성바울 성당 유적지라는 곳이다. 19세기 포르투갈 왕위 계승 전쟁의 혼란 속에 불에 타 현재는 건물 벽만 남고 나머지는 전소된, 조금은 기괴한 건물 터다. 자국의 예수교 박해를 피해 마카오로 도망친 일본인 신자들이 만든 까닭에 바로크풍의 건물임에도 외벽에는 한자가 새겨져 있고, 국화(菊花) 문양도 조각되어 있다.
이 유적지가 진정 특이한 것은 동아시아 최초의 유럽식 대학이었다는 점이다. 성당이 세워지던 시대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 가톨릭이 서유럽에서 교세를 잃어가던 때였다. 오랜 기간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 출신 대리점주가 분사해 시장을 확장하는 상황이랄까? 그렇다면 시장을 잃은 회사 처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랑 똑같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된다.
총대는 예수회가 멨다. 예수회는 종교개혁에 맞서 동아시아 지역 선교에 힘썼다. 마침 포르투갈이 은근슬쩍 차지한 마카오는 당시 기준으로는 극동에 가까웠고, 마카오를 거점으로 일본, 그리고 중국을 선교하는 게 꽤 오랜 기간 교황청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마카오에는 유독 예수회 성당이 많다. 마카오는 아시아 선교의 전진기지로 키워졌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도 마카오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예수회는 교리를 유연하게 해석하고 적용했다. 하느님의 호칭이 천주(天主)이거나 상제(上帝)여도 무방했고, 공자나 조상의 제사 정도는 관습으로 인정했다. 100% 천연 과즙 주스로 비유하자면, 예수회는 유교라는 이름의 오디 주스가 좀 섞여도 포도 주스 함량이 높으면 어쨌건 그건 포도 주스라고 보았다. 중국인들로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예수회가 잘나가자 이후 경쟁자들이 들어왔는데, 이들은 교리를 엄격하게 고집했다. 하느님은 반드시 천주라고만 표기해야 했고, 제사는 금지됐다.
문명국임을 자부하던 중국인들은 분노했다. 가톨릭의 선교 활동은 금지됐다. 예수회의 유연한 선교 정책도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중국은 완고해졌다. 그 뒤 가톨릭과 중국의 관계는 냉랭해졌다.
중국과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의 합의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첫 번째 예수회 출신이 교황을 맞은 교황청은 최근 중국과 ‘재미있는’ 합의를 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교황의 고유 권한인 주교 임명권을 무시하고 국가가 주교를 임명했다. 이는 교황청과 중국이 내내 반목해온 이유였다. 이번 합의를 통해 교황청은 중국이 임명한 주교를 정식 주교로 받아들이고, 중국 정부도 교황청을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회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같은 문제를, 중국 주교 파문(破門)이라는 초강수로 해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다운 해법으로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청나라 시절 유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물꼬를 튼 것처럼, 이번에는 공산당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시 한번 물꼬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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