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8일~20일 열린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로써 필자는 2000년 6월 1차, 2007년 10월 2차에 이어 평양에서 개최된 세 차례 정상회담에 모두 참석하는 영예를 누렸다. 1·2차 평양 정상회담 모두 성공적이었지만 이번 3차 정상회담은 특별히 돋보였다.

우선 형식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북측이 보여준 환대와 배려는 과거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여준 개인적 환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박3일간의 북한 체류 기간 내내 김 위원장은 국정을 마다하고 평양에서 백두산까지 거의 전 일정을 문 대통령과 함께했다. 두 정상이 같이한 시간만 17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두 정상 간 신뢰와 정도 깊어졌다고 하겠다.

1·2차 평양 정상회담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두 지도자 모두 거리 환영 인파를 제외하고 북한 주민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 수산물식당에서 북측 주민들과 직접 만나 대화했을 뿐 아니라 능라도 5·1 경기장에서는 15만 평양 시민에게 대중 연설까지 했다. 문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는 절묘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김정은 위원장과 확약했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평양 시민들의 반응을 물었던 것이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답했다. 지도자와 주민 모두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평양 사진공동취재단9월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배려도 돋보였다. 대표단이 평양 체류 중 관람한 평양대극장 공연과 능라도 5·1 경기장에서의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에서 과거와 같은 체제 선전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평양대극장 공연에서는 오히려 남측 노래를 더 많이 공연했고 집단체조도 남측 참관을 의식해서 공연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고 한다.

성과 면에서도 1·2차 평양 정상회담과는 크게 달랐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총론이고 2007년 10·4 선언은 각론이었다면, 이번 9월 평양 공동선언은 지극히 실천적인 합의다. 특히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했다’는 평양 공동선언 제1조가 인상적이다. 이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한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로 구체화되었다. 일부에선 북한 핵 문제는 그냥 놓아두고 이런 합의를 한 것은 일방적 무장해제와 다를 바 없다고 폄하하고 있으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재래식 군사 부문의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 핵 대결을 막고 비핵화로 가는 최선의 길이다. 이번 군사 분야 이행합의는 한반도 평화의 절반을 이룬 쾌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

평양 공동선언 제5조에서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미국이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따른 상응 조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등 추가 조치를 계속해나가겠다고 확약했다. 1962년 원자력연구소 설치 이래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로 알려진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북한이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를 남측에 약속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제5조 합의가 북·미 교착상태를 푸는 단서가 된 셈이다.

그 밖에도 평양 공동선언은 경제협력, 이산가족 재상봉, 사회 문화 교류 등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실천적 조치를 담고 있다. 제2조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을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형식이나 내용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로, 비핵화로,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하겠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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