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중순 심 의원은 온라인 서버에 저장된 정부의 비공개 재정정보를 공개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예산을 부적절하게 집행해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는 문제 제기에 대해 해명하는 한편, 심 의원이 해당 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했다며 의원실 보좌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설명하는 상황은 이렇다. 정부의 예산집행 내역이 저장된 한국재정정보원 재정분석시스템(올랩· OLAP)이 최근 과부하로 오작동을 일으켰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심재철 의원실이 연루되어 있었다. 지난달 초순부터 심 의원의 보좌진들이 대통령비서실, 국무총리실, 대법원 등 30여 개 정부기관의 행정정보를 최고 100만 건이나 열람·다운로드한 것이다. 심재철 의원실 아이디로는 접근 권한이 없는 비공개 정보였다. 기재부는 자료를 반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심 의원은 응하지 않았다. 기재부는 9월17일 관련자들을 정보보호법, 전자정부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했다. “제3자에게 다시 유출되면 국가 안위 등 각 정부기관의 운영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함”을 이유로 들었다.

ⓒ시사IN 조남진10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심재철 의원(가운데)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이에 설전이 오가고 있다.

심 의원이 손에 쥔 비공개 정보가 무슨 내용인지 관심이 집중됐다. 검찰에 고발된 다음 날부터 심재철 의원은 정부의 예산집행 내역을 공개했다. 진실 공방이 시작됐다. “정부 부처 카드 청구 내역 중 단란주점이 포함됐다”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전수조사 결과 유흥주점, 단란주점 결제 내역이 없다”라고 밝혔다. 심재철 의원은 청와대 직원들이 “정부 내부 지침상 결제가 금지된 심야 시간, 법정 공휴일에 청와대 업무추진비를 썼다” “‘이자카야’ ‘펍(pub)’ 등에서 음주하는 데에 예산을 사용했다”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청와대는 365일 24시간 일하는 조직이다” “해당 가게들은 카드 결제 내역에 적힌 상호와 달리 식사하는 곳이었다”라고 맞받았다. ‘미용업종’이라고 적힌 비용 6만6000원은 혹한기 모나코 국왕 전담 경호요원들의 목욕비라고, ‘오락 관련 비용’은 영화 〈1987〉 관람료라고 해명했다.

9월28일 심 의원은 새로운 자료를 내놓았다. “청와대 비서관이 회의비 수백만원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라는 주장이었다. 정부 예산집행 지침상, 정부기관 소속 직원은 업무 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별도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다. 그러자 ‘2차 폭로’ 당일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브리핑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가 가동되지 않고 출범했기에 일반인 신분, 정책자문가로 6월 말까지 지급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10월2일 국회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심재철 의원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40분 가까이 설전을 주고받았으나 새로운 폭로는 나오지 않았다. 기재부가 감사원에 요청한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속단할 수 없지만,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심재철 의원이 쥔 정보의 가치는 내용 자체보다는 그 희소성에서 나왔다. 심 의원은 정부의 비공개 정보를 공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권한자였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각 기관의 예산집행 정보는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 dBrain)’에 저장된다. 일반인은 디브레인의 자료를 열람할 수 없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국고 관련 공무원 5만5000여 명만이 아이디를 지급받아 사용한다. 디브레인 정보는 1일 1회 자동으로 올랩에 전송된다. 국회 보좌진 700여 명과 기재부, 각 부처 감사관실 등 행정부 공무원들은 여기서 자료를 열람한다. 국회 보좌진은 올랩 등재 자료의 일부에만 접근할 수 있다. 10월2일 대정부 질문 중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심재철 의원에게 “기재부가 올랩에 등재하는 자료 250건 중 60% 이상은 의원님이 열람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심 의원이 ‘모종의 방법’으로 재정정보 100%에 접근한 것이다.

정부는 심재철 의원 측 행위를 ‘권한 없는 외부인의 해킹’이라고 규정했다. 기재부는 “해당 의원실 ID의 정상적 권한과 조작으로는 열람·다운로드가 불가능한” 정보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반면 심 의원은 접근 권한이 없는 자료인지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10월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그는 “‘들어가면 안 된다’ ‘여기는 비인가다’라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분명히 ‘감사관실용’이라는 경고가 떠 있는 자료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정부의 비공개 재정정보 유출 의혹 혐의를 받고 있는 심재철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이 9월21일 의원실에서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열람을 위한 ‘조작’ 과정에 대해서도 주장이 갈린다. 심 의원은 “올랩에서 자료를 검색하던 중 키보드 백스페이스키를 두 번 눌렀더니 바로 (비공개 정보가 담긴) 폴더가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백스페이스를 누른 뒤 5단계 과정을 더 거쳐야 재정집행 실적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쳐) 190회 이상, 최고 1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받은 것은 타당치 않다”라고 말했다.

심재철 의원과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다. 추석 연휴 뒤 긴급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정당하게 확보한 자료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한 행위를 두고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은 기획되고 의도된 야당 탄압”이라고 말했다. 심재철 의원 본인도 “업무추진비가 무슨 국가 기밀인가?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입법부 구성원의 정당한 예산 사용처 감시라는 주장이다.

클린카드 제도가 도입된 배경

업무추진비는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쓰는 비용이다. 과거에는 판공비라고 불렸다. 기재부가 펴내는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이하 예산지침)’이 각 정부기관의 업무추진비를 규제한다. 예산지침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는 반드시 ‘클린카드’라는 법인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업종과 시간, 장소에 따라 결제할 수 없는 항목이 정해져 있다. 유흥업종, 레저업종, 사행업종 등은 결제가 원천 봉쇄된다. 심재철 의원이 언급한 “밤 11시 이후 심야 시간대나 주말 사용” 규제도 여기에 적혀 있다. 다만 업종과 달리 시간과 장소 규제는 증빙 자료를 제출하면 예외가 인정된다.

업무추진비 사용 기준을 까다롭게 정한 것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기재부는 클린카드 제도가 “2004년 말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산하기관의 업무추진비 과다 사용이 문제되어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권고에 따라 도입”됐다고 적었다. 2006년 기재부가 클린카드 도입을 모든 정부기관으로 확대하면서 “유흥업소에 대해 결제가 안 되도록 등록한 카드”라고만 설명한 것을 보면, 그간 업무추진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가늠할 만하다.

업무추진비를 오남용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의 줄다리기는 클린카드 도입 뒤에도 계속됐다. 2011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홈페이지에는 “법인카드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골프장, 노래방 등에서 법인카드로 수억원을 사용하거나 환송회 등의 명목으로 유흥업소에서 수천만원을 결제하는 등 부패 행위가 빈발한” 공공기관 사례가 적혔다. 골프연습장, 칵테일바 등까지 법인카드 사용금지 업종이 확대된 계기였다. 그 뒤에도 업무추진비를 낭비하는 사례가 적발되면 해당 업종에 한해 클린카드를 못 쓰게 되고, 또 새로운 업종에서 다른 유형의 낭비가 발생하는 일이 반복됐다.

2014년 ‘법인(클린)카드 사용 투명성 및 내부통제 강화’라는 자료에서 권익위가 지적한 문제는 이번 심재철 의원 사건과도 일맥상통한다. “의무적 제한 업종은 아니지만 업종이 주점으로 분류되는 업소에서 음주 목적의 부적정 사용 지속 발생.” 의무적 제한 업종은 단란주점, 룸살롱 등 ‘유흥주점’을 말한다. 권익위는 ‘기타 주점’을 의무적 제한 업종에 포함하라고 권고하지는 않았으나, ‘음주 목적’에 사용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적었다. 10월2일 대정부 질문에서 “펍이나 이자카야라고 하는 상호를 썼더라도 뭔지를 봐야 된다. (중략) 클린카드로 못 쓰는 것은 유흥주점이고 기타 주점은 쓸 수 있다”라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말은 사실이다. “술집이나 이자카야에서 쓸 수 없으므로 지침 위반”이라는 심재철 의원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4년 전 권익위는 일종의 ‘예산 낭비 풍선효과’를 두고 우려 섞인 지적을 한 바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은 각 기관이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도록 정한다.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업체명이나 시간까지 공개할지 금액만 적을지는 각 기관 재량이다. 다만 이 법에는 비공개 대상 정보에 기준도 있다. ‘국가 안전보장, 국방,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 등 8가지다.

모든 정부기관의 업무추진비가 ‘깜깜이’ 상태는 아니다. 업무추진비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는 기관도 있다. 가령 문화체육관광부나 일부 지자체들은 홈페이지에 장관, 지자체장의 업무추진비까지 세세히 공개한다. 여기에는 정확한 사용일자와 사유, 장소(상호), 금액까지 포함된다. 다만 결제 시각은 없다. 반면 청와대는 정책 조정 및 현안 간담회비, 국내외 주요 인사 초청행사비, 국가기념일 행사 지원 등 항목별 총액만 적혀 있다. 국회, 헌법재판소 등 다른 몇몇 기관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미국 요인을 만나 정상회담 관련 논의를 했을 때, 청와대 자료에서는 ‘국외 주요 인사 초청행사비’에 포함되는 일정이, 심 의원 자료에서는 ‘새벽 2시 ○○이자카야’로 적힐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반대로, 직원들의 유흥 목적 회식이 ‘정책 조정 및 현안 간담회비’로 둔갑해도 파악이 어렵다.

9월2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청와대 업무추진비 공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외교 문제를 예시로 들었다. 남인순 최고위원은 “미국 등 여러 외교 사절을 만나는 업무를 해야 하는 청와대로서는 정보가 공개되면 위해를 당할 수 있는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미국에서 고위직 인사가 비공개로 국내를 방문했을 때 (중략) 호텔 음식점에서 지출될 텐데 마치 고급 음식점에서 카드를 사용한 것인 양 왜곡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의 이은미 팀장은 “청와대가 먼저 공개했다면 불필요한 논란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원칙을 세우고 세부 내역을 공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국회도 마찬가지다”라며 투명성 강화가 해법이라고 짚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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