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4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기흥사업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오후 1시59분쯤 6-3라인 지하 1층 복도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3명은 모두 협력업체 노동자였다. 이들 중 사건 발생 당일 이 아무개씨(24)가 숨졌다. 심정지 상태로 동탄성심병원으로 실려간 김 아무개씨(54)는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역시 심정지로 긴급 이송된 주 아무개씨(26)는 중태로 알려졌다.

이산화탄소(CO₂)로 인한 질식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소속된 창성에이스는 소방시설 공사를 주 업무로 한다. 창성에이스는 이번 사고가 난 공간에서 화재탐지기(자동화재탐지설비) 교체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 상황이 아닌데도, 오작동으로 고농축 이산화탄소가 새어나왔다. 현재 수사 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확한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사건을 은폐하려 드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사건이 발생하고 2시간 정도 지난 후에야 당국에 신고한 사실 등이 밝혀졌다. 이씨가 숨지고 나서야 외부에 공표한 셈이다. 2013년, 2014년에 이어 이번에 일어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사고도 ‘인재(人災)’라는 비판을 받는다(34~35쪽 기사 참조).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시사IN〉이 추가로 입수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사고 당일인 9월4일 사건 현장의 화재탐지기 로그 기록이다.

ⓒ김병욱 의원실 제공9월4일 이산화탄소 누출 사고로 쓰러진 협력업체 노동자가 실려 나오는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해당 로그 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후 1시59분 경종(Bell·사이렌)이 꺼져 있었다(아래 〈표〉 참조). 이산화탄소는 색깔도 냄새도 없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일정 이상 높아지면 울리는 경종이 아니면 누출을 알기 어렵다. 즉, 분초를 다투는 이산화탄소 유출 사고에서 해당 알람이 꺼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초기 대처를 어렵게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만든 ‘화재진압용 가스 누출 사고 대응’을 보면 “증기는 공기보다 무거워 실내로부터 탈출 외에는 피할 방법이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누출 사고가 나면 빨리 밖으로 뛰쳐나가 산소를 흡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뜻이다. 또한 누출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음향 경보장치 작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화약제의 방사 개시 후 1분 이상 음향 경보가 지속”되어야 한다.

게다가 로그 기록에는 사고가 일어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기흥사업장 6-3라인의 지하 1층뿐만 아니라 1·2·3·5·6층 모두 ‘경종 연동정지’ 혹은 ‘Bell Stop’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위험 상황이 건물 전체에 공지가 되지 않았다. 더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공개된 사건 당시 로비 CCTV를 보면, 대피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자체 소방대를 쳐다보며 직원들은 제 갈 길을 갔다.

수사 당국은 현재 이번 사건에 소방시설법(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9조 3항 위반을 적용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가 ‘소방시설을 유지·관리할 때 소방시설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폐쇄(잠금 포함)·차단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부분을 어겼다는 혐의다. 다만 해당 법에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소방시설의 점검·정비를 위한 폐쇄·차단은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있지만,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소방청은 홍익표 의원실에 공식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 사고는 노후 중계기 교체 및 노후 배선 제거 작업을 위해 기존 설비의 경종을 정지시킨 행위다. 여기에 제9조 제3항 단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홍익표 의원실 제공9월4일 사건 현장의 화재탐지기 로그 기록(아래). 자료를 보면 1~6층 모두 ‘경종 연동정지’ 또는 ‘Bell Stop’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해당 로그 기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창성에이스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화재탐지기 교체 공사를 하겠다는 내용을 소방 당국에 신고했다. 이후에는 잔해물 처리를 위해 현장을 살피며 업무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전기설비가 많은 반도체공장에서는 스프링클러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전기설비에 물을 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고농축 이산화탄소를 저장해뒀다가 배관을 따라 적정 장소에 분사하는 방식으로 방재 작업을 한다.

화재진압용 이산화탄소는 정부가 지정한 유해 화학물질은 아니지만, 고농축되면 생명을 빼앗을 정도로 위험하다. 조성식 한림대 성심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산화탄소는 자체로 유독가스는 아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가 고농도로 방출되어 대기 중 산소 비율이 떨어지면,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질식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상황실 녹취록에 남겨진 삼성 관계자의 말

사고 당시 다량의 이산화탄소는 원래 보관된 저장실을 빠져나왔다. 이산화탄소 방출 압력으로 밸브는 손상됐다. 저장실 벽이 외관으로 보기에도 망가질 정도로 훼손됐고, 그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산화탄소가 복도까지 뿜어져 나갔다. 이산화탄소 누출을 알리는 경종이 꺼진 상태에서 복도에 있던 작업자들이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익표 의원실에서 확보한 삼성 내부 방재센터 출동 내역에 따르면, 9월4일 오후 2시20분 세 사람이 구급차에 실려 동탄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21분 뒤인 오후 2시41분에는 사건 구조에 참여한 자체 소방대 신 아무개씨도 메스꺼움을 호소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했다.

오후 3시43분 이 아무개씨가 가장 먼저 숨졌다. 이후 삼성전자는 한강유역환경청에 오후 3시50분에 신고했고, 3시56분 한강유역환경청은 화학물질안전원에 알렸으며, 4시2분 화학물질안전원이 소방청에 보고했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 상황실에서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전화를 했다. 그조차도 기흥사업장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몰라, 처음에는 수원사업장으로 연락을 했다. 오후 4시12분이었다.

기흥사업장에 연락을 했지만,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상황실에 녹취된 날것 그대로 인용했다). “지금 현재 세 명 정도가, 이제 두 명은 지금 의식이 돌아와서 병원에 계시는 걸로 되어 있고요.” 통화에 나온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통화 당시 이씨 등 두 사람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 상황실 관계자는 삼성전자 직원에게 왜 119에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옆 사람에게 확인하며) 119한테 신고가 안 들어왔지? (다시 기흥사업장 관계자에게) 신고가 아예 한 건도 안 들어왔는데요?” 8일 뒤 그 중 한 사람은 숨졌다.

홍익표 의원은 “2013년, 2014년 삼성전자 사망 사건에서 지적된 문제가 이번에도 반복됐다. 119에 신고를 하지 않고, 안전교육이 미비했으며, 경보음도 제대로 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도 협력업체 노동자만 숨졌다. 위험은 또다시 외주화됐다. 이 구조적인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삼성은 지금이라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바란다. 10월15일 소방청 국정감사에 최고책임자가 출석해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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