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서는 변호사의 귀띔이었다. “안종범 피고인이 늘 특별접견실에 나와 있더라.” 김은지 기자는 한 귀로 흘려듣지 않았다. 다른 피고인들은 어떨까?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신동빈 등 국정 농단 주요 피고인들이 변호인 특별면회를 남용한다는 팩트를 확인했다. 정확한 데이터도 구했다. 지난 9월14일 발간된 제575호에 김 기자의 특종이 실렸다(‘박근혜의 슬기로운 감방생활’). 10월9일 〈동아일보〉는 ‘[단독] 최순실, 수감 669일간 553회 변호사 접견’을 보도했다. 김 기자가 25일 전에 보도한 〈시사IN〉 기사와 똑같았다. 전날인 10월8일에도 한 방송사가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국감(국정감사) 시즌이었다. 한 의원실이 뒤늦게 김 기자가 확인한 자료를 확보했다. 10여 년 전 정치부 기자 초년생 시절 처음 접한 국감 풍경은 이채로웠다. 보좌관들은 벼락치기 수험생처럼 의원실에서 숙식을 했다. 의원 이름이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오게 하려고 매일 보도자료를 냈다. 기자들도 특종거리를 찾아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피감기관 공무원들은 국감장 복도에 대기 중이었다. 국회의원들도 이때만은 눈에 불을 켜고 ‘일한다’. 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국회의원들에게 국감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과 〈조선일보〉가 외쳤던 ‘통일 대박론’은 어디로 간 걸까. 그런 보수 야당과 보수 신문을 두고 SNS에서는 당시 〈조선일보〉의 ‘통일 대박론 기획기사’ 제목을 공유하는 게 놀이처럼 유행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시기상조론’ ‘퍼주기론’을 내세워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을 반대한다.

보수 혁신과 쇄신의 깃발을 든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문정인 교수(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와 통일을 주제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2015년 2월16일 〈매일신문〉). 당시 김 교수는 문정인 교수를 “동북아 문제와 통일 문제에 있어 최고의 학자이자 실천적 지성이다. 지금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랬다”라고 평가했다. “남북문제를 푸는 것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지 않으냐?”라며 김병준 교수는 물었다. 문정인 교수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등을 꼽으며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남북 협력과 평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해볼 만하다”라고 화답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한반도 운명이 결정되는 2018년 판문점 선언의 실천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커버스토리로 기록한다. 당시 김 교수의 말마따나 지금이야말로 “해볼 만한” 때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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