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를 주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립 유치원 비리에 대한 최초의 토론회”라고 말했다. “제목에 ‘유치원’이 들어가는 국회 토론회를 전부 확인해봤더니, 유치원 단체를 띄워주고 그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행사뿐이었다. 운영 비리나 불법적 회계 문제를 지적하는 토론회는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사립 유치원 비리가 심각하다면 왜 국회는 ‘민원 해결 행사’만 열었을까? 다시 박 의원의 설명이다. “지역구당 유치원이 적으면 15개, 많으면 30개 정도 있다. 작은 유치원이면 원생 100명이다. 30곳이면 원생 3000명, 부모는 6000명이다. 모두 유권자들이다. ‘사립유치원연합회를 건드려 소문이 잘못 돌면 지역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토론회 발제문에는 유치원의 비리 실태가 실렸다. 유치원 운영비로 원장 소유 건물에 수영장을 짓거나, 급식비로 랍스터와 홍어회를 먹은 경기도 사례 등이 담겼다. 토론회가 무산된 뒤 한유총 관계자들은 “해당 감사는 전문성 떨어지는 민간 시민감사관들이 수행했다. 이를 근거로 유치원 원장들을 비리 집단으로 모는 토론회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민감사관을 위촉했고, 반드시 교육청 공무원과 함께 감사했다”라고 말했다(〈시사IN〉 제522호 ‘사립 유치원의 좋은 시절은 가고’ 기사 참조). 박용진 의원은 “군 비리를 지적하면 군인 전체를 모욕하는 것인가? 이견이 있다면 토론회를 막을 게 아니라 발언을 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토론회 사건’의 배경이 된 본질을 보자. 사립 유치원에는 국가 재정이 들어간다. 2013년부터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으로 매해 2조원 가까이 유치원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원아 1인당 월 학비 22만원, 방과후 과정 7만원을 학부모에게 지원하는 게 원칙인데, 실제 지원금은 사립 유치원 통장으로 입금된다. 그 밖에 급식비, 인건비 일부를 각 시도 교육청이 지원한다. 사립 유치원 연간 예산의 약 45%가 국고지원금에서 나온다. 유치원 회계를 관리·감독하는 일은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립 유치원 회계는 조금 특수하다. 법적으로 사립 유치원은 사립학교법상 ‘학교’에 속한다. 사학법상 학교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따른다. 위조·폐기가 어렵고 제3자가 감사하기에 용이한 시스템인 에듀파인, 나이스 등으로 회계를 처리하도록 규칙은 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사립 유치원은 이 법의 단서 조항에 따라 에듀파인을 쓰지 않는다. ‘보조금을 받지 않는 학교’에 속해서다.
원아당 29만원씩, 매해 2조원씩 들어가는 국가 재정은 ‘보조금’이 아니라 ‘지원금’이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원리상 학부모에게 지원된다. 학부모는 기관을 선택한 뒤 정부 지원금에 본인 부담금을 더해서 원비를 낸다. 사립 유치원에 직접 지원되는 보조금이 아니다. 그래서 사립 유치원은 학교들과 같은 회계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박용진 의원 등 일각에서는 입법 미비라고 지적한다. 이들이 보기에 이 상황은 일종의 ‘말장난’이다. 사립 유치원 설립자, 원장이 정부 재정을 뒷주머니에 챙겨도 “보조금이 아니라 지원금”이라는 핑계를 대면 제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법을 고쳐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실상은 더 복잡하다.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날 소지가 있다.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을 참고하면, 문제는 ‘결손보조금’에서 나온다. 초·중·고등학교는 결손 금액을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학생 수가 적어도 수익을 걱정하지 않는다. 국가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유치원에 들어가는 모든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한다면, 사립 유치원들은 자연히 결손보조금까지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로서는 투명한 회계를 얻는 대신 사립 유치원 경영자의 실책까지 떠안게 된다.
사립 유치원을 사립학교 회계기준의 예외로 둔 것은 ‘이익단체의 실력 행사’를 염려한 것이라는 지적이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 자체의 명분도 있다. 초·중·고등학교와 달리 유치원은 대부분 법인이 아니라 사인이 설립한다. 임차료, 전기료, 인건비 등을 개인이 해결해야 하기에, 법인을 기준으로 하는 사립학교 회계기준을 일괄 적용하기 어렵다. 재정의 성격도 고려해야 한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가던 돈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취지로 설계된 제도다. 사립 유치원 처지에서 보면, 정부가 무상교육을 하기 전부터 받던 돈이 들어오는 것뿐이다. 지급 주체가 정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학부모에 대한 지원금’이 ‘유치원 운영에 대한 보조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로 흔히 요약되는 사립 유치원 측의 거친 주장은, 풀어 쓰면 이런 논리다.
전북 익산에서 유치원을 경영한다는 한유총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립 유치원은 원아 수입으로 운영하는데 원아가 모집되지 않으면 적자를 본다. 법인과 달리 우리(사립 유치원 설립자)는 재산세 등 유치원 관련 세금도 자비로 낸다. 기본 운영비, 전기료도 마찬가지다. 인건비가 부담되니 운전도 하고 장도 보고 회계도 직접 한다. 물론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원장님 참…’ 싶은 사례도 있다. 그렇다고 비리 집단으로 몰리는 것은 억울하다. 지금은 과도기다. 불법주차를 한두 대 하면 딱지를 떼야겠지만 수백 대가 주차되어 있다면 주차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사립 유치원 단체 ‘시설사용료 보장하라’
사립 유치원 단체에서 요구하는 ‘주차장’은 ‘사립 유치원 실정에 맞는 재무·회계 규칙’이다. 구체적으로는 세입·세출 예산에서 ‘시설사용료’ 항목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교육을 유치원에서 대신하고 있으니 정부에서 임대료를 받겠다는 주장이다. 2014년에도 교육부는 사립 유치원만을 대상으로 한 재무·회계 규칙을 제정하려 했으나, 한유총은 ‘시설사용료’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청회를 방해해 무산시켰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종의 수익금을 인정해달라는, 유치원 단체가 계속 주장해온 이야기다. 그러나 법적으로 유치원은 학교이고, 회계에서는 교육 목적에 맞는 비용만 사용해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한유총이 언제까지 강경한 태도일지는 불확실하다. 정부가 사립 유치원을 우회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국공립 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올해 초 교육부는 “5년간 순차적으로 전국 국공립 유치원 학급 2600개 이상을 신·증설한다”라고 밝혔다. 지금도 국공립 유치원을 선호하지만 숫자가 부족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까운 사립 유치원을 찾는 학부모가 많다. 사립 유치원들이 ‘사유재산권’을 이유로 회계 처리 방식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뜻밖에도 정부가 주도하는 ‘시장 논리’에 따라 퇴출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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