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급기야 아이가 도시락을 싸서 놀이터에 가겠다고 한다. 금요일 오후 청소년수련관에서 하는 발레 수업과 저녁에 하는 시민회관 합기도 수업 사이에 집에 들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저녁 먹으러 오가는 시간도 아껴 내처 밖에서 놀겠다니, 서둘러 유부초밥(같이 노는 동네 동생 것까지 2인분)을 만들어 담으며 이 아이를 키운 건 8할이 놀이터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옷과 도시락을 가방에 욱여넣고 신이 나서 나선다. 불타는 금요일, 놀이터에서 생수 병나발 불며 꽥꽥 놀아줘야 한 주의 마무리가 잘 된다나.

우리 동네 중앙공원 놀이터에는 그런 목적으로 모이는 어린이 ‘놀티즌’이 야심한 시간까지 꽤 많다. 감사한 일이다. 상업지구 바로 옆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덕분이다. 아이들은 이곳을 정말 좋아한다. 공원 시작점이라 아름드리나무들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가게도 있고 무엇보다 어른들의 시야를 벗어날 수 있어서이다. 가장 짜릿한 놀이터는 적당히 위험한 놀이터임을 절감한다. 숨바꼭질하다 나무 위로 올라간 아이를 못 찾아 식겁했던 기억이 난다.

쾌청한 가을날 방방곡곡 크고 작은 축제와 행사들이 펼쳐진다. 체험활동이며 먹을거리며 어린이 동반객을 위한 배려도 많다. 하지만 늘 안타깝다. 주 대상이 아이들인 행사조차 그 많은 설치물 사이에 놀이터는 없어서다. 청소년 동아리 잔치니 어린이 진로적성 축제니 하면서도 어른들(때로는 시장님이나 기관장님) 보기 좋게만 만들고 꾸민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굳이 ‘각 잡은’ 공간이나 시소·그네·미끄럼틀을 마련하자는 게 아니다. 적당한 공간에 통나무 몇 개만 가져다 놓아도 훌륭한 놀이터가 된다. 임시 무대 뚝딱뚝딱 세우는 솜씨로 구름사다리 하나 만들어놓을 수는 없는지. 물론 아이들 놀이기구에는 안전진단이며 이런저런 법규가 까다롭겠지만 조금 더 아이들 눈높이에서 궁리해보면 해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놀 터가 없어서 부스 사이를 뛰어다니다 어른들에게 한 소리 듣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하다.

명당자리 가장 접근성 좋은 위치에 반드시 놀이터가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선진국은 과연 선진국이다 싶다. 스위스 로잔 외곽의 산악 열차 정거장 옆에도, 파리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지하철역 앞에도, 헬싱키 앞바다 과거 요새로 이용되었던 섬 중앙에도, 가장 빛이 잘 들고 쾌적한 장소에는 반드시 놀이터가 있다. 끈으로 엮어 만든 정글짐, 뺑뺑이, 사다리 철봉 몇 개에 모래바닥이면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학교 중앙 현관 로비에 놀이기구를 설치하면 어떨까

서울 광화문광장에도 청계광장에도 시청 앞 서울광장에도 놀이터가 없다. 분수대나 조형물이 아니라 알록달록 굵은 끈으로 엮은 정글짐 하나 높이 세워줄 수는 없을까. 매달리기와 기어오르기는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잊고 있다.

학교는 어떤가. 누가 다치거나 무슨 일만 생기면 아예 뽑아버려 놀이기구 자체가 없는 학교도 많다. 있어도 운동장 구석에 형식적으로 놓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나무도 못 타게 하고 벤치에도 못 올라가게 한다.

체육관이나 강당이 없어도 어지간한 학교마다 중앙 현관 로비는 제법 널찍하다. 작품 전시를 하거나 만남의 장소처럼 활용하는 곳도 있다. 그 자리에 줄타기나 정글짐, 암벽 타기 같은 상시 놀이기구를 설치하면 어떨까. 요즘 아이들은 비가 와서, 더워서, 미세먼지 때문에 정해진 체육수업조차 운동장에서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학교별 형편에 맞는 적당한 놀이공간을 확보해주는 일이 운동장을 줄여 주차장 만드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크느라 늘 좀이 쑤신다.


기자명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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