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맛집 정보도 유행이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식당 베스트 10’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한국판 〈미쉐린(미슐랭) 가이드〉가 발행되고 나서는 한동안 너도나도 미쉐린 스타 식당을 찾아다녔다. 요즘은 스트리트 푸드나 현지 노점식이 트렌드다. 한국으로 치면 떡볶이다.

한국의 떡볶이 같은 위상을 가진 요리는 어떤 것일까. 맵고 짜고 달아야 하는지, 떡볶이처럼 전쟁 통에 생겨난 역사성이 있어야 하는지, 혹은 그저 그 나라의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을 말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홍콩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요즘은 ‘커리(인도식 카레) 어묵’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요리다. 찐 어묵을 꼬치에 끼워서, 매콤한 커리 국물에 끓이면 끝이다. 공산품이다 보니 어묵 맛은 비슷하지만, 커리 국물만은 개성이 뚜렷하다. 집집마다 커리에 쓰는 향신료가 다르다. 게으른 집은 녹말가루 가득한 기성 커리 국물을 쓰는데, 이러면 맛이 텁텁하다. 제대로 향신료 맛을 내겠다고 무리하면 향이 너무 강하다. 적당히 경쾌하게 매콤하면서 뒤에 텁텁함이 없으면 잘하는 집이다.

ⓒ전명윤 제공어묵을 커리 국물에 끓인 ‘커리 어묵’.
요리 자체는 꽤 퓨전이다. 물고기 살을 다져서 경단 형태로 만드는 요리를 중국에서는 약 4000년 전 순황제가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어묵을 만든 건 일본이 최초로 보인다. 동글동글하고 탄력 있는 어묵이 홍콩으로 전해진 건 1940년대 일본 점령기로 알려져 있다.

커리는 영국령 홍콩에서 경찰 업무와 하급 관리를 담당하던 인도인들이 퍼트렸다. 일본의 인스턴트 파우더 카레를 모방한 한국과 달리 홍콩은 커리의 역사도 길다. 인스턴트 가루를 끓이는 게 아니라, 실제 향신료를 직접 배합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즉 커리 어묵은 일본과 영국령 시절 인도의 합작품이다. 두 침략자의 재료가 만나 꽃을 피운 셈이다. 이런 서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커리 어묵은 홍콩 역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홍콩 사람들은 커리 어묵을 정말 사랑한다. 홍콩 요리에 대한 안내서 〈홍콩미도(香港味道)〉 2권에 따르면 홍콩 사람들은 커리 어묵을 하루에 평균 375만 개, 약 55t씩 먹는다고 한다. 홍콩 인구가 약 734만명이니, 인구 두 명 중 한 명은 매일 커리 어묵을 하나씩 먹는 셈이다.

이쯤 사랑을 받으니 어묵을 둘러싼 논쟁도 자연스레 일어났다. 원조 논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묵이 일본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순황제가 만든 음식이라는 주장도 종종 제기된다. 사실 중국 요리에서 정통 생선 완자라는 걸 먹어보면, 탄력만 없을 뿐 어묵이랑 거의 같다. 하지만 탱탱하지 않은 어묵을 어찌 어묵이라 할 수 있을까? 홍콩에서 결론은 늘 ‘국수주의 물러가라’로 끝난다.

2016년 홍콩의 ‘어묵 혁명’ 들어보셨나요? 비슷한 논쟁이 하나 더 있다. 홍콩 사회에서도 생선 함량이 적고 탄수화물 덩어리인 어묵을 짜디짠 커리에 푹 담가 먹는 요리가 건강에 좋겠느냐는 지적이 되풀이된다. 사실 사람들은 건강 염려에도 정크푸드를 먹는 이유를 저마다 갖고 있다. 맛 또는 추억 때문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 때문일 수도 있다. 라면을 먹으며 건강식품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커리 어묵을 대하는 홍콩 사람들의 대답도 비슷하다.

2016년에는 심지어 ‘어묵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이 어묵 노점상을 단속하자, 우산 혁명 이후 경찰에 반감을 가진 홍콩 독립 요구파 시민들이 대거 결합하면서 밤새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후 커리 어묵은 중국 지배에 대한 저항의 의미까지 부여받게 되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 생각하는 다수의 홍콩 젊은이들 처지에서 커리 어묵은 남다른 음식일 수밖에 없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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