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 사흘 만에 역대 최다 기록을 넘고 100만명 이상 동의한 청와대 국민청원 제목이다. 계기는 지난 10월14일 서울의 한 피시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었다. 피의자 김성수씨 가족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받으려 한다’고 반응했다. 국민청원을 제출한 이는 “나쁜 마음 먹으면 우울증 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심신미약의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될 수 있으니까요”라고 적었다. 2008년 ‘조두순 사건’부터 지난해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까지, 중범죄 피의자가 정신질환 병력을 내세울 때마다 수면 위에 떠오르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신중론을 펼친다. 심신미약을 둘러싼 논쟁을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연합뉴스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성수씨. 그는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한 달간 정신감정을 받는다.
Q. 심신미약이란 어떤 의미인가.

A. 심신미약(心神微弱)은 형법에서 나온 개념이다. 형법 제10조 1항, 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전자는 심신상실, 후자가 심신미약이다. 단순히 지적 능력이 낮거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이유만으로 형을 감경하지는 않는다. 그 원인이 ‘심신장애’라는 게 중요하다.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에 영향을 줄 정도의 심신장애라는 게 무엇인지 형법에 따로 열거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정신질환이 심신장애의 요인인지, 음주 만취·약물중독 상태도 포함되는지 따위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다. 대법원은 사안에 따라 법관이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Q. 심신장애인의 범죄를 벌하지 않거나 형을 줄여주는 취지는 무엇인가.

A. ‘어떤 행위가 범죄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범죄는 규범에 따르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자의 행위에 한해 성립한다. ‘기대할 수 있는지’라는 개념을 법학에서는 ‘책임성’이라고 한다. 어린아이, 심한 정신질환자처럼 법규범에 따르지 않아도 비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두고 ‘책임능력이 없다’고 한다. 책임능력이 없는 이들은 법규범을 따를 수가 없기에, 처벌한다고 행동이 개선되거나 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다. 대신 심신장애인이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원은 치료감호 처분으로 사회에서 격리해 치료한다. 징역과 치료감호를 병행하기도 한다. 현대 법치국가 가운데 책임능력을 형 집행에 반영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형법 제10조는 일개 형법 조항이 아니라 형사정책의 근간에 속한다.

Q. ‘우울증 약만 처방받으면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A.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우선 우울증만으로 심신미약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게다가 어떤 재판부도 살인 피의자의 심신장애 여부를 정신과 진단서 한 장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피의자 측이 제출하는 치료 기록은 ‘정신감정’ 여부를 법원이 결정할 때 참고하는 자료다. 정신감정이란 형사소송법에 따른 사법절차다. 대개 피의자를 몇 주 동안 병원에 입원시켜 이뤄진다. 피의자 면담뿐만 아니라 MRI·CT 등 다층적 검사를 거친다. 허위 감정은 위증의 벌을 받는다.

Q. 형법 제10조는 강행규정이다. 피의자의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판사는 반드시 처벌하지 않거나 형을 줄여야 한다. 정신감정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 아닌가.

A. 심신장애와 정신질환이라는 두 개념은 구분해야 한다. 심신장애는 어디까지나 법률 용어로, 정신질환이라는 의학 용어와 범위가 일치하지 않는다. 의료기관이 정신감정으로 판단하는 것은 피의자의 증상과 의심되는 질병까지다. 법원은 감정 결과뿐만 아니라 범행 동기와 수단·범행 전후 행동·반성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피의자의 심신장애 여부를 가린다. 그래서 대법원은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의 판단은 법률적 판단으로서 반드시 전문 감정인의 의견에 기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거칠게 말해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재판부는 형을 감경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무죄가 인정되면 재판부는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명제와 사실상 같다. 심신장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재판부이기 때문이다.

Q. 정신감정 결과 이상이 없어도 재판부에서 심신장애라고 판단할 수 있다면 더 문제 아닌가.

A. 이론적으로는 그런 사례도 나올 수 있지만 실제 판결 경향은 다르다. 법원의 심신장애 기준이 의료인보다 엄격한 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유진 부연구위원은 ‘법정에 선 정신장애(〈형사정책연구〉 2018년 가을호)’에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정신감정이 시행된 사건 222건을 분석했다. 감정인(의료기관)은 피의자 81.5%가 정신장애라고 판단한 반면, 법관은 73%만 심신장애로 인정했다. 선행 연구에서 드러난 격차는 더 크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수행된 연구를 보면, ‘정신이상이 있다’는 감정 결과의 절반만이 재판정에서 수용됐다. 이유는 크게 둘이다. 우선 심신장애 판단 시점이 다르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 해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 판별 능력이나 행위 통제 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태도다. 학계에서는 양 직업군의 기본 관점에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의료인이 ‘치료해야 할 증상’으로 보는 일을 법조인은 ‘처벌해야 할 위법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연합뉴스2017년 11월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 아무개양과 박 아무개양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Q. 그럼에도 ‘심신장애로 인한 감형 사례가 많다’고 여기는 이유는.

A.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주장하는 강력범죄 피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중형이 유력한 그들로서는 잃을 게 없는 선택이다.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피의자가 실제로 감형을 받으면 보도가 쏟아진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법원이 심신장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피의자들도 “조현병·우울증·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다”라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심신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이웃을 살해한 하 아무개씨도 마찬가지였다. “우울증으로 2002년부터 70여 차례 통원 치료를 받았다”라고 주장했으나 10월23일 재판부는 징역 23년형을 선고했다. 심신장애 주장 자체는 전가의 보도지만, 법원이 이를 수용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Q. 음주 문제가 남는다. 만취 상태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을 줄여주는 게 타당한가.

A. 알코올을 다른 심신장애 사유와 구별하는 장치가 없지는 않다.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 즉 범죄를 저지를 생각으로 만취하는 일은 처벌한다고 규정한 형법 제10조 3항이다. ‘위험 발생을 예견한 경우’뿐만 아니라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도 여기 속한다는 게 대법원과 다수설 입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취한 상태라는 이유로 형을 감경하는 제도 자체가 불합리하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조두순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으면서 여론에 불을 붙였다. 지금도 성범죄는 2010년 시행된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음주가 감경 요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신창현 의원은 제10조 3항의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를 삭제하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모든 범죄의 음주로 인한 감경을 원천 봉쇄하는 법안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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