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은 ‘한반도 대운하’였다. 지지층에서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임기 첫해 ‘광우병 촛불’을 겪으며 지지율도 떨어졌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19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반대한다면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국토해양부는 곧바로 운하사업단을 해체했고, 대운하에 대한 연구용역도 중단됐다. 민간 건설사의 각종 운하 컨소시엄도 해체 순서를 밟았다.
그러나 이명박 청와대는 여전히 ‘대운하 프로젝트’를 회복시킬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에 따르면, 2008년 9월부터 12월 사이 청와대는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비했다.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해외 사례를 살폈으며, 경제정책을 논할 때에도 ‘대운하’라는 키워드를 공공연하게 꺼내들었다.
2008년 9월8일 정무기획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주요 국정 현안 관련 여론조사 결과보고’에는 “경인운하 재추진 결정 후 한반도 대운하 건설 찬반”이라는 조사 항목이 게재되어 있다. 찬성 19.9%, 반대 72.6%로 대운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문건에는 “국정 운영 지지층에서도 반대(53.7%)가 찬성(38.6%)보다 높았음”이라는 분석이 함께 실려 있었다.
같은 날 정무수석실은 ‘주간 정국분석 및 전망’이라는 문건을 제출한다. 이 문건은 당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여당 의원이 대운하 필요성을 언급했다며, 이에 대한 청와대 대응 방침을 설명한다. “현시점에서 대운하 이슈 재부각은 악재가 될 소지가 큼”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경기침체 장기화, 경기부양 필요성 증대 등 상황을 지켜보며 대운하 수혜 지역(자치단체)과 민간의 강력한 요청 등을 기다려 자연스럽게 촉발될 타이밍을 기다려야”라는 정무적 전략을 제시했다. 이명박 청와대가 이미 대운하 재추진 의사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청와대의 여론 살피기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2008년 9월17일, 정무기획비서관실은 ‘2008 추석 민심 여론조사 결과보고’ 문건을 제출했다. 질문은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정부가 대운하 건설 문제를 어떻게 할 것으로 생각하는가?”에 18.8%가 “완전히 중단한 것 같다”라고 답한 반면, 69.3%는 “일시적 중단일 뿐 재추진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문건에는 “대운하 추진 여부에 대해 명백히 ‘한다’ 혹은 ‘안 한다’는 메시지가 없는 상태에서 간헐적으로 ‘대운하’ 이슈가 부상, 다수 국민은 정부가 언젠가 대운하를 추진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이라는 분석이 담겼다.
이 시기 청와대 실무진은 해외 운하 사례를 적극 보고했다. 2008년 9월22일, 청와대 국토해양비서관실은 ‘녹색성장을 위한 프랑스 센-노르 유럽(Seine-Nord Europe) 운하 건설계획’이라는 문건(오른쪽 맨 아래)을 제출했다. 센-노르 유럽 운하는 파리를 지나는 센 강과 프랑스 북부 노르 주를 연결하는 장폭 운하 사업이다. 문건에는 이 사업의 시행 과정, 사업 규모, 사업 효과 등 설명이 담겼는데 “연간 50만 대 화물차 통행 감축효과”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고, 고용과 성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처럼 긍정적 전망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센-노르 유럽 운하는 벨기에-네덜란드 운하 구간과도 연결되는 국제 프로젝트로 프랑스 정부 외에도 유럽연합이 함께 추진한 사업이다. 운하가 들어서는 구간이 평야지대라서 산맥을 뚫어야 하는 ‘한반도 대운하’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이런 차이점은 문건에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여론 살피며 호시탐탐 ‘대운하 추진’
2008년 10월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향후 경제 전망과 대응책’ 문건에는 “과감한 규제 완화와 내수 진작을 통하여 일자리 제공과 소비 촉진”을 하기 위해 “한반도 대운하, 새만금 개발, 남해안 개발 프로젝트, 호남고속철 등 가시적으로 성과가 나타날 수 있는 대형 국책사업을 조기 착공”하자고 제안한다.
당시 정동기 민정수석이 이끌던 청와대 민정라인이 ‘대운하 추진’을 제안한 배경도 문건에 등장한다. “IMF에 못지않은 본격적인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기존의 경제정책 방향을 재검토하여 위기관리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대책의 일환으로 대운하 카드를 꺼냈다. 이 외에도 문건에서 ‘향후 대책’으로 경제팀 인사 교체를 건의하기도 했다. “현 강만수 경제팀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경우 책임이 대통령에게 돌아올 우려가 있음”이라며 “강력한 ‘관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무수석실 역시 대운하에 대한 보고를 꾸준히 이어갔다. 2008년 11월10일에 작성한 ‘주간 정국분석 및 전망’ 문서(왼쪽)에는 “대운하는 논쟁 소지가 적은 사업부터 내실 있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효”하다고 설명한다.
정무수석실이 2008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운하 관련 지역별 여론 동향 및 추진전략’ 문건(왼쪽 맨 위)은 더 노골적이다. 이 문건에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추진 중단 발표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운하(물길 정비) 사업의 조기 추진을 요구하는 여론이 대세”라며 “운하에 대한 추진 동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강조한다. 지역별 여론 동향을 분석한 뒤 경인운하, 영산강 프로젝트, 낙동강 물길 정비사업, 포항 동빈내항 운하 등 4개 ‘물길 사업’을 예로 들며 각 사업의 우선순위(포항-경인-영산강-낙동강 순)를 지정했다.
이 문건은 훗날 추진된 ‘4대강 사업’이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의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문건의 ‘사업 추진 여건 분석’ 대목에는 “한반도 대운하는 60년대 경부고속도로와 같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메가 프로젝트로서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대운하’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해 “작은 비용으로 단기간에 사업효과 거양이 기대되는 프로젝트부터 순차적으로 추진”하며 “낙동강·영산강 정비는 ‘운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정부의 통상적인 치수·방재 사업의 일환으로 준비작업 돌입”하자고 한다. 결국 포항 동빈내항 운하, 경인운하 등으로 운하 사업에 대한 여론을 끌어올리되, 낙동강·영산강 정비 사업은 치수 사업인 척 준비하다 훗날 운하로 탈바꿈시키자는 전략이다. 같은 해 12월에 발표한 ‘4대강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의 포석이었음을 뒷받침하는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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