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6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의거 109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에 다녀왔다. 행사는 시작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순풍을 탄 뒤 이뤄진 남북 종교인 간의 본격 회합이라는 점에서였다. 안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0·26 의거를 기념하는 남북 공동행사는 천주교 신자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여기에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가 화답하면서 첫 공동행사가 열린 것이 지난 2010년이다.

그 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공동행사는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해왔다. 북한의 핵 도발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에는 북이 행사에 불참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교황 방북을 희망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것이 행사 일주일 전이었다. 이런 극적인 시점에 남북 종교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열린 셈이다.

ⓒ시사IN 양한모

그렇다고 귀가 번쩍 뜨일 얘기가 오간 것은 아니었다. 교황 방북이 아직 확정된 상태가 아닌지라 분위기는 조심스러웠다. 국제사회의 제재 조처에 대한 불만도 북측 참가단을 경직시킨 듯했다. 황해남도 해주에 있는 안 의사의 생가와 그가 다녔던 청계성당을 복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북측은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2012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북한을 방문해 이들 터를 답사하고, 남북 공동복원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뒤 일체의 논의가 중단된 채 시간만 흐른 상태다.

그럼에도 희망을 거는 것은 남과 북 양쪽에서 높이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가 안중근 의사여서다. 일각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남북이 함께할 수 있는 사업 후보로 안 의사 추모 사업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안충석 신부는 “내년에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청계성당 머릿돌을 축성받아 복원을 시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세례명 도마)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은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21세기의 평화 담론으로 새롭게 피어날 수 있을까. ‘평양냉면’에 발목 잡히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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