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현씨(35)는 오후 2시 늘 같은 백반집에서 밥을 먹는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뒤 산비탈에 있는 ‘가정식당’이다. 동갑내기 아주머니 두 분이 20년째 하는 식당에 2016년 10월 폐업 위기가 찾아왔다. 주변에 사무실이 비어 손님은 줄었는데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단다. 뭐라도 해야 했다. 매일 한 끼는 꼭 여기서 먹는 ‘연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해 12월 건물주가 바뀌었고 가정식당은 자리를 지켰다. 2년 뒤, 이번에는 술집 주인 안상현씨가 위기에 빠졌다. 건물주가 시세의 3배 수준 월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안씨의 술집은 가정식당에서 걸어서 3분 거리다. 이태원 경리단길을 따라 올라가 구불구불한 계단을 지나면 나오는 뒷골목에 있다. 6호선 녹사평역에서는 도보로 20분이다. 주변은 주택가다. 어두워지면 그나마 있던 발길도 뚝 끊긴다. 여기라면 임차료가 오를 리 없다고, 긴 호흡으로 사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용실을 인수해 2013년 12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를 열었다.


ⓒ시사IN 조남진2013년 12월 서울 경리단길 뒷골목에 문을 연 ‘한국술집 안씨막걸리’. 그간 건물주는 여러 차례 월세 인상을 요구해왔다.

1층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지만 꿈은 컸다. 안씨는 대학 졸업 뒤 보스턴 컨설팅 그룹 컨설턴트, 티몬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재능 있고 젊은 사람 중 한 명이고, 교육 기회도 누린 만큼 한국 사회에 모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에 출마했다. 후보 4명에 선발되었지만 결국 떨어졌다. 기존 직장인 티몬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 낭인’ 생활을 하다 도망치듯 경기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로 떠났다. 2013년 7월의 일이다.

용문 오일장의 족발집에서 동네 할머니가 빚은 수제 막걸리를 만났다. 당시 유행하던 크래프트 비어보다 훨씬 맛있었다. 와인이나 사케에는 몇 만원씩 쓰면서 한국 술에는 5000원도 아까워하는 게 이상했다. 21세기 서울을 대표할 ‘한국 술 전문점’을 만들어 한국 고유의 술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투자자를 모았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등 100여 명이 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설치미술 작가들과 일주일간 워크숍을 열어 가게 콘셉트를 정했다. 사대주의, 국수주의, 이색주의를 안 하기로 했다. 외국을 따라 하지도, ‘국뽕’에 취하지도, 유행에 휩쓸리지도 않고 100년 가는 가게를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시사IN 조남진안상현씨가 운영하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이름을 올렸다.

개업하고 첫 3년은 반쯤 우울증 상태였다. 첫해 월 매출 1000만원을 겨우 찍었다. 한국 술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음식이 좋아야 했다. 실력 있는 요리사를 뽑고, 음식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외국에 먹으러 다니며 연구했다. 그렇게 술과 음식을 전달하는 수준을 높이자 반응이 왔다. 매출이 해마다 월평균 1000만원씩 상승했다. 지금은 월 5000만~6000만원 수준이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더 플레이트: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블루리본 서베이: 서울의 맛집’, 미국의 유명 요식업 전문 매체 〈Eater〉의 ‘The 38 Essential Seoul Restaurants’ 등 국내외 저명 식당 소개서에 이름을 올렸다. 손님의 30%가 외국인이다. 나름대로 해온 노력을 인정받는구나 싶었다.

“슬프게도, 상권이 죽기를 바라왔다”

하지만 ‘100년 가게’를 꿈꾸기에 한국의 부동산은 지나치게 출렁이는 재화였다. 안씨는 처음에 1억5000만원 전세로 3년 계약을 했다. 1년이 지나자 건물주는 전세보증금을 10% 올려달라고 했다. 건물주 눈 밖에 나면 좋을 게 없다고 여겼다. 맞춰주었다. 또 1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전세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월세를 300만원 달라고 했다. 이러다가는 어차피 쫓겨나거나 계속 끌려다니겠다 싶어 어렵다고 했다. 1년이 지난 뒤 건물주는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임차료 인상률 상한인 연 9%만큼 임차료를 올려 월세를 달라고 요구했다. 안씨는 그렇다면 3년 계약을 새로 해서 상가법상 보호 기간인 5년보다 조금 더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건물주는 안씨를 상대로 두 차례 소송을 걸기도 했다.

12월29일이면 5년 계약 기간이 끝난다. 6개월 전부터 건물주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을 요구해왔다. 건물주는 ‘확인받은 임대 시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리단길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경리단길의 10평 기준 월세 시세는 300만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경리단길 인근 부동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경리단길 메인 골목 월세가 약 200만원이다. 안씨막걸리 위치에 그 정도 평수 월세는 복층임을 감안하더라도 100만원, 비싸도 120만원에서 130만원이다”라고 말했다. 인근 다른 부동산 공인중개사도 “공실이 많아서 월세를 내리라고 건물주들을 설득하는 상황이다. 월 300만원은 너무 세다”라고 말했다.

안씨막걸리가 있는 경리단길 뒤쪽 300m 골목은 ‘보석길’이라 불린다. 개업 당시인 2013년 말에는 안씨를 포함해 예닐곱 명이 가게를 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신규 가게가 30개 생겼다. 하지만 경리단길은 2014년 말 피크를 찍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씨막걸리 근처 마카롱 가게가 공실이 된 지 3년, 그 가게 지하에 있던 바도 공실이 된 지 1년이다. 경리단길 메인에서도 공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안씨막걸리’ 인근 경리단길에서는 ‘임대’ 전단이 붙은 공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씨는 “슬픈 이야기지만 상권이 죽기를 바라왔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자신의 임차료가 부당하게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상권 침체가 현실화된 지금, 안씨는 월 300만원을 내지 않으면 가게를 떠나야 한다. 이 문제가 개개인의 도덕성이나 판단력으로 풀리지 않는다고 느낀 이유다. 지난 5년 동안 사업을 운영하는 스트레스 가운데 30%는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가게가 더 잘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쫓겨날 것 같고, 인테리어 설비투자를 더 하고 싶은데 그러다 쫓겨날 것 같았다. 안씨는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계약을 맺을 의사도 있으니 대화를 나눠보자는 카카오톡을 건물주에게 보냈으나, 대화 의사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요리사를 6명 고용하고 있는 안씨는 자신이 결코 ‘약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방적으로 누구는 약자이고 누구는 강자라는 프레임은, 사실관계가 아닌 것 같다. 미용실이 있었는데 장사가 잘 안 되어 나가면서 안씨막걸리가 들어왔다. 미용실 입장에서는 내가 포식자다. 나는 건물주와의 관계에서는 피식자이지만 그 구조 자체나 건물주 개인의 이익 추구를 문제 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감당하고 있는 어떤 변동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가게를 옮기면 무엇을 잃게 될까. 대리석 바닥, 화장실, 주방을 꾸미는 데 든 비용도 있지만, 그보다 무형적 손실이 더 크다고 안씨는 말한다. “안씨막걸리는 다른 곳에서 더 크고 깨끗한 매장을 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새로운 것만 추구하면서 우리 모두의 기억을 자꾸 포맷하고 덮어쓰기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좋은 일이 있었던 곳’이라는 한 손님의 평을 기억한다. 5년, 10년이 지난 뒤에도 가게가 여기에 있으면 사회가 함께 이 공간의 가치를 기억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거잖나. 우리 같은 가게 하나를 살리기 위해 사회가 희생하라고 할 순 없다. 다만 부동산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지금보다는 좀 더 높아져야 하지 않나.” 기억을 쌓아나가는 안씨막걸리 본점이라는 상징성을 지키고 싶은 안씨로서는, 매출을 고려하면 월 300만원을 감내하고라도 이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음 요구가 500만원이 될지 1000만원이 될지 알 수 없고, 이는 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법정 싸움을 각오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자영업자들이 숙련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안씨가 보기에 숙련을 갖추고 혁신을 시도하는 자영업자도 지금 구조에서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안씨는 한국 사회가 숙련과 혁신에 보상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치에 기초한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게 되어야 역사와 맥락을 소비할 텐데 지금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소비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쏠림 현상과 썰물을 만들어낸다고 안씨는 본다. “그동안 임대료 문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이익 조정의 측면에서만 이야기되거나 선악 구도로 다뤄져왔다.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 이야기해야 한다. 자영업자도 음식을 팔고 끝인 게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이 쌓이는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들도 무조건 새로운 곳으로 쏠리기보다 오래된 가게의 가치와 맥락을 소비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100년 가는 가게가 더 생길 수 있다. 다만 이런 인식 변화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임차료 규제도 좀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임차료 문제와 관련해 한국 사회는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왔다. 상가임대차보호법 보호 기간을 10년으로 늘리고 월세 인상률 상한을 9%에서 5%로 낮추는 등의 노력이 그것이다. 하지만 안씨막걸리 사례에서 보듯 겹겹의 장치는 불안정하며 이마저 보호 기간이 지나면 취약하다. 〈골목의 전쟁〉 저자 김영준씨는 “안씨막걸리는 전형적으로 임대인이 가치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로 보인다. 경리단길처럼 불편함을 무릅쓰고 찾아가야 하는 상권은 콘텐츠를 가진 가게들이 찾아갈 이유를 제공하는데, 내재 가치 이상으로 임차료를 올리면 그런 가게들이 이탈해버린다. 비즈니스와 건물 자체가 공동체로 엮인 하나의 생태계인 만큼, 지자체 등에서 조정을 시도해 임차료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처럼 2년 계약 기본에, 한정된 기간에만 월세 인상률 상한을 특정하고 계약갱신 청구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애초에 장기 계약을 맺거나 따로 기간을 정하지 않는 계약을 맺고 양자가 이를 잘 지키게끔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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