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달에 두 번 그림책 서평을 씁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제 눈에 재미있는 그림책을 한 달에 두 권이나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그림책이 참 많습니다. 매주 새로 나오는 그림책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 제 마음에, 제 입맛에 맞는 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그럴 겁니다. 세상에 좋은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릴 하냐고요. 아마도 그분은 매우 관대한 취향을 지닌 분일 겁니다. 저는 아주 편협한 취향을 가진 게 틀림없습니다.

첫째, 저는 교육적인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선생님이 할 일이지 예술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교훈처럼 메시지가 분명한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메시지는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게 아니라 독자가 작품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재미없는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독자에게 고통을 줍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그림책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그림책만이 독자를 스스로 성장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미의 기준 역시 제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이 세 가지 기준을 통과하는 그림책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차재혁 글·최은영 그림, 노란상상 펴냄

게다가 저는 아주 고집이 세고 솔직한 성격입니다. 평소 아내는 제게 세 가지 죄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오만과 교만과 독설이라고요. 가끔 제 성격을 모르는 출판사 대표는 갑자기 점심 먹자고 연락을 하고 새로 출간한 그림책을 전해줍니다. 그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서평 때문에 찾아오실 필요가 없다고요. 저는 제 눈에 재미있는 그림책만 서평을 쓴다고요. 하지만 그분들은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책의 서평을 쓰지 않으면 그분과의 인연이 끊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저는 기꺼이 인간관계를 버리고 창작의 자유를 지킵니다.

그림책 〈내 마음속에는〉의 표지를 보고 저는 마음속으로 ‘음, 재미없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유리창 앞에 서서 눈 내리는 밖을 내다보는 표지가 매력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속표지를 볼 때만 해도 별것 없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책가방을 메고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펼치는 순간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었습니다. 마치 표지와 속표지가 속임수인 것만 같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사무실을 나와 카메라를 들고 걸었다. 아무것도 찍지 못한 채 한 시간쯤 걸었을까? 사무실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어두워지기 시작한 남산이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내 마음속에는〉 중에서).”

더불어 분문의 첫 그림은 주인공이 문 밖으로 보고 있는, 도시의 검은 밤 풍경입니다. 검은 빌딩은 검은 괴물들 같고, 빌딩의 불빛은 괴물의 눈빛 같습니다. 눈 내리고 어둡고 적막한 도시의 빌딩 뒤로 욕망의 바벨탑 같은, 검은 남산이 보입니다.

메시지 아닌 소재가 분명한 책

이렇게 담담한 말투와 적막한 한 장의 그림이 제 눈과 마음을 확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 글 한 자 없이 완전히 대조적인 한 장의 그림이 이어집니다. 방금 본 검은 풍경이 창밖으로 보이는 실내 공간입니다. 넓은 거실에 소파와 안락의자와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보입니다. 참 따뜻하고 안락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공간에서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길을 잃은 걸까?’

어떤 사람은 이 그림책이야말로 메시지가 분명한 책이 아니냐고 저에게 물을 것입니다.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는〉은 메시지가 아니라 소재가 분명한 책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소재에 찬성하는 독자든 반대하는 독자든 상관없이 이 그림책을 끝까지 흥미롭게 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그림책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끝까지 보게 만듭니다. 생각의 씨앗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생각과 의미와 감동은 모두 독자의 몫입니다. 이것이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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