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억의 창고다. 민족에게도 그렇고 개인에게도 그렇다. 막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찍어 앨범에 간직하고, 설명을 붙여 보관한다.

오랫동안 재개발 지역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낡은 가구와 더불어 앨범을 생각보다 많이 버리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집은 성혼선언문과 결혼식 사진부터 아이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된 앨범들을 두고 간다. 또 어떤 집은 3~4대에 걸친 집안의 역사가 담긴 앨범을 버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걸 왜 버릴까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강홍구재개발 지역에서 발견한 버려진 앨범들.
결혼식 사진부터 아이의 성장 과정이 기록된 사진 등이 실려 있었다.
ⓒ강홍구

사진을 갈무리하는 앨범이라는 양식은 무척 오래되었다. 사진이 발명된 19세기에도 앨범은 있었다. 그런 앨범은 가끔 유럽의 벼룩시장에 싼값에 나오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앨범에 넣을 만큼 사진이 많지 않았던 1960~1970년대에는 대개 사진을 액자 속에 끼워 벽에 걸어놓았다. 하나의 액자에 사진 한 장이 아니라 한 액자에 여러 장의 사진이 두서없이 꽂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진 액자가 여러 개 걸린 집도 있었다. 안방, 대청마루 등에 걸려 파리똥이 덕지덕지 묻어 있기도 하고, 유리 액자 밖에 새로운 사진을 꽂아놓기도 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기억

그런 사진들은 대부분 가족의 역사여서 누렇게 바랜 증조할아버지의 결혼 흑백사진부터 군대에 간 아들, 근래에 태어난 손자의 백일 사진까지 시간의 층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집안의 역사를 읽고, 다른 집과 비교해보기도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시각화된 가족사로, 사진은 나라의 역사와도 겹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은평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주운 어떤 앨범은 정말 그랬다. 4대 정도의 가족사가 앨범 한 권에 수록되어 있었다. 앨범에 나오는 아이들의 증조부모부터 1980년대까지 가족들의 변화가 실려 있었다.

시골 출신인 남성이 상경해 운전사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남성은 처음에는 버스를 몰다가 쿠웨이트나 카타르쯤으로 보이는 중동에 가서
일을 한 듯했다. 귀국한 다음 노란 개인택시를 지급받는 모습도 실려 있었다. 운동장에 수많은 택시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운전사들도 유니폼을 입고 택시 옆에 서 있었다. 가족사적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온 가족이 택시 옆에서 찍은 기념사진도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진은 기이하게도 지금은 사라진 한 정당 연수원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이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화해서 앨범을 만드는 일은 많지 않다. 사진 대부분은 휴대전화나 태블릿, 컴퓨터, 클라우드 등에 저장되어 있다. 기억은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으로 소환할 수 있다. 지워버리는 것도 쉽다. 사진의 무게, 사진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사라지면서 이제 재개발 지역에서도 버린 앨범을 발견하고 줍는 일이 점점 드물어질 것이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