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4시40분, 습관처럼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일요일임을 알아차린 건 문 밖에 있어야 할 신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허탈했지만 모처럼 시간을 번 것 같은 기분으로 현관문을 닫고 들어와 읽던 책을 펼쳤다. 한 장 정도 읽다 말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홈쇼핑 광고가 시선을 끌려 애쓰고 있었고 액션 영화에선 쉴 새 없이 총격전이 펼쳐졌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나 싶어 SNS를 켜 오랜만에 새벽 시간 타임라인을 훑었다.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소식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느리고 고요하게 시간 속에서 글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새벽 요가를 하느라 두 달째 일찍 일어나고 있지만 타임라인은 거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나도 그 굴뚝 위에 있었다

내가 굴뚝에 오른 것은 2014년이다. 101일 동안 쌍용차 굴뚝에 머물렀고 교섭의 문을 연 성과를 안고 내려왔다. 그러나 육체적·정신적 건강은 그 뒤 한참 동안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느끼지 못했던 통증과 알아차릴 수 없던 신경정신과적 문제들이 가끔 노출되었다. 한동안 대인기피가 깊었고 공황장애를 넘나드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지난 4월 한 달 동안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서운한 감정이 갑자기 올라올 때가 있었고 이따금 차갑게 식어가는 감정이 만져지기도 했다. 일반적 진단으로 진단할 수 없고 종합검진으로 종합할 수 없는 문제. 커졌다가 작아졌다 반복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고 발산하는 생각의 용틀임을 경험했다. 이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제였을까.

친구 한 녀석이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위 굴뚝에 동료 한 명과 올라가 있다. 오늘로 374일째다(11월20일 기준). 파인텍지회 홍기탁이다. 동료 이름은 박준호다. 구미에 있던 사업장 이름이 한국합섬에서 스타케미칼로, 이제는 충남에 있는 파인텍으로 바뀌었다. 사장도 바뀌어서 이제는 김세권이란 사람이다. 친구 기탁이가 준호와 서울에서 굴뚝 농성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현재 지회장 차광호 동지가 구미에 있던 스타케미칼 사업장에서 408일 동안 굴뚝 농성을 했다. 고용과 노동조합 그리고 단체협약을 승계하기로 노사 합의를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숙사라고 주어진 곳은 빗자루 하나 없이 거미줄만 쳐진 덩그런 컨테이너 박스였다.

파인텍의 모회사 스타플렉스는 매출 563억원, 영업손실 21억원, 당기순이익 22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다. 굴뚝 농성이 1년을 넘어가지만 노동자들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김세권 대표이사는 어떤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다. 빈번한 해외 출장으로 비즈니스에 여념이 없다. 매일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 1인 시위가 이어지고, 노조·노동단체·종교인·학생·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저녁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에서 문화제를 연다.

11월18일에는 한의사, 의사, 심리치유사가 굴뚝에 직접 올라가 건강검진을 했다. 말라가는 몸도 몸이지만 짙은 미세먼지만큼 앞이 보이지 않는 내일이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인간의 몸은 과학적 수치로 진단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있는 장소와 처해진 조건에 따라, 그리고 계절과 바람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몸의 반응이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의 정신적 피해 상황과 건강이다. 몸 상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지만 정신과 신경의 손상은 데이터 밖에 존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르드바 무카’. 요가를 하며 고개 드는 자세를 할 때마다 75m 높이에서 바람과 비와 곧 내릴 눈과 잦은 진동과 싸우고 있을 이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한껏 고개를 젖혀야만 굴뚝을 볼 수 있다.

기자명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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