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정세가 우려스럽다. 크게 세 가지 쟁점이 한반도를 떠돌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 완화 문제다. 북한은 그간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을 사실상 폐기했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부분 해체에 들어갔으며, 미국의 참관하에 나머지 부분도 폐기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9월 평양 공동선언 제5조 2항은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에 의거해 상응 조치를 취하면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인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정도 했으면 미국이 부분적 제재 완화 의사를 밝혀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게 북측 입장이다.

미국은 단호하다. ‘완전한 비핵화 없이 제재 완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핵시설, 핵연료, 핵탄두, 탄도미사일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완전히 폐기하지 않는 한 제재 완화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뉴욕타임스〉는 황해북도 삭간몰 기지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거대한 기만’이라고 비난했다. ‘완전한 비핵화’에 단거리와 중거리 탄도미사일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미국 일각의 주장이 본격화된 셈이다. 이 모두를 신고·사찰·검증·폐기해야 유엔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신고·사찰 대 종전선언’도 쟁점으로 남아 있다. 북한은 먼저 종전선언과 불가침 조약 등으로 북·미 간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가 설정돼야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리스트를 신고하고 사찰 및 검증을 받을 수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반면 미국은 북측이 먼저 리스트를 신고한 뒤 사찰을 진행해야 종전선언 채택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라는 비핵화의 일반적 공식에 따르면 미국 측 주장이 맞다. 그러나 새로운 관계 설정 없이 평양이 이를 수용하리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조율 문제다. 미국은 북·미 관계와 비핵화 협상이 교착을 보이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앞서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9월19일 평양 공동선언 이후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에 따라 진행된 비무장지대에서의 긴장 완화 조치나 남북 경제협력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다.

쟁점은 세 가지이지만, 질문은 하나다. 과연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합리적일까. 먼저 북한의 항복을 요구하는 듯한 일방주의적 태도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미 북한 지도자는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밝혔고, 일부 구체적 행동도 취하고 있다. 긍정적 행보에 대한 보상과 격려는 상황 진전을 위해서는 상식에 가깝다.

남북 지도자의 신뢰 구축은 북·미 교착을 푸는 열쇠

같은 관점에서 보면 ‘선(先)신고·사찰, 후(後)종전선언’ 도 다르지 않다. 적대국으로 간주되는 나라에 자발적으로 핵무기 수량과 성능, 위치를 선제적으로 신고하는 일은 북한 아니라 다른 어느 국가에서도 상상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신고 내용을 두고 신뢰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이 이미 핵탄두 60~65개를 보유했다고 추정한다. 만일 평양이 실제로 생산한 숫자가 이보다 적다고 신고하면 어떻게 되나. 미국은 북한의 ‘고백’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고, 신고·검증이라는 절차로 인해 오히려 불신이 커져 협상의 판이 깨질 공산도 적지 않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9월19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9월 평양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개선, 특히 남북 두 지도자 사이의 신뢰 구축이 북·미 교착을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하나의 트랙이 삐걱거려도 다른 트랙이 활성화된다면 남북, 북·미, 한·미 간 논의의 선순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 모든 트랙을 무조건 하나로 일치시켜야 한다는 고집은 하나의 트랙이 무너질 때 전부를 무너뜨리는 출구 없는 동반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워싱턴의 판단은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건설적 역할을 간과하는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역사적으로 미국의 외교는 합리성을 근간으로 이뤄져왔다.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 오랜 우방의 말에 귀 기울일 때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