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경씨 전화를 받았다. “이제 후원하지 않아도…. 단체가 해산하기로 했거든요.” 먼저 든 생각, ‘지금도 내가 이 단체를 후원하고 있구나’였다. 단체 소식지가 끊긴 지 꽤 됐다. 연말에 기부금 영수증 처리 때면 후원하고 있다는 걸 상기한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는 주한 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2000년)을 취재하며 인연을 맺었다. 영화 〈괴물〉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건이다. ‘과격한’ 단체명인데 내 나이 또래 여성 활동가 3명이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는 걸 알고 그때부터 매월 후원했다.

1992년 11월 기지촌 여성 윤금이씨가 주한 미군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뒤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꾸려졌다. 1993년 공대위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부로 탈바꿈했다. 이태원 조중필 피살 사건(1997년), 두 여중생이 숨진 주한 미군 장갑차 사건(2002년) 등 주한 미군 관련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은 이 작은 단체에 먼저 연락했다. 단체는 주한 미군 기지가 있는 전국 지자체와 시민단체를 네트워킹했다. 주한 미군 문제와 관련한 허브 구실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마침내 우공이산, 달걀이 바위를 깼다. 2001년 한·미 행정협정(SOFA) 개정의 지렛대가 되었다. 이 단체는 1994년부터 SOFA 개정을 요구하며 9년간 439회에 걸쳐 용산 미군 기지 앞에서 매주 ‘금요집회’를 열었다. SOFA 개정은 이런 민간단체 활동의 결과였다. 2013년 4월 외교부에 주한 미군 사건사고 상담센터도 만들어졌다(〈평화의 불씨, 26년의 기록〉, 2018). 유경씨는 “한 단체가 전담해 맡을 만큼 주한 미군 범죄 이슈가 발생하지도 않고, 미군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이 여럿 생겼다. 역사의 한 장을 열어낸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그 소임을 잘했고 다했다”라고 말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26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해산했다.

이 단체뿐 아니라, 세상이 좋아지면 해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 단체가 적지 않다. ‘환경문제가 해결되면’ 환경운동연합이, ‘인권과 민주주의가 생활 속에 뿌리내리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시민이 주인 되면’ 참여연대가, ‘경제적 불의가 사라지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해산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올까? 세상은 여전히 미세먼지가, 사법 적폐가, 재벌의 불법 승계가 만연하다. 시민단체가 할 일이 많은데, 요즘 살림이 말이 아니라고 이구동성이다. 〈시사IN〉 정기 구독자만 감소하는 줄 알았는데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후원이 줄고 있다. ‘입금이 최고의 연대’라는 말이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 내던 후원금을 다른 곳에 보태고 싶어서 변진경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동보호 시민단체 가운데 후원할 곳을 물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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