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는 국경이 반듯한 국가가 많다. ‘기하학적 국경 획정’이라고 부른다. 이게 왜 신기한가? 대개 산맥과 강줄기 등 자연지리를 따라 문화적 공동체가 분포하고, 그를 바탕으로 국가가 형성된다. 국경은 삐뚤빼뚤한 경계가 자연스럽다. 기하학적인 직선 국경은 그 나라가 누군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생겨났음을 뜻한다. 이란과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중동에는 20세기 이후 등장한 신생국이 많다.

중동의 많은 ‘국가’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등장했다. 국가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제국의 백성들은 ‘국가’ 또는 ‘국민’이라는 생경한 정체성을 갑자기 부여받았다. 혼란스러웠다. 하나의 민족 공동체가 창졸간에 분리되기도 했고, 반대로 견원지간의 부족과 종파가 느닷없이 한 나라로 묶이기도 했다. 인구 3000만명이 넘는 자존심 강한 민족 쿠르드는 네 나라로 찢어졌다. 반대로 레바논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다양한 종파와 종족이 한 국가 안에 편입되었다.

작위적 국가 형성의 부작용이랄까? 분쟁의 씨앗은 여기저기 뿌려졌다. 쿠르드 독립운동은 터키와 시리아와 이라크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레바논과 시리아는 내전의 땅이 되었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 동일 집단의 원치 않는 분리 사례나, 이질적 공동체의 병합 사례는 지금까지도 중동 분쟁의 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곳에서 ‘국가’란 얄궂은 주제다.

 

ⓒAFP PHOTO11월23일 가자 시 동부 교외에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이스라엘 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


중동에서 국가 건설이 시작된 지 얼추 100년이 된 지금도 나라 없는 이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얽히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이 땅의 아랍 선주민들은 유대 국가의 2등 국민이 되든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난민이 되어야 했다.

논쟁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정체성이 여타 아랍 부족과 뚜렷이 구별되지는 않았다. 샴 지방(레반트라고도 함)이나 미스르(지금의 이집트) 또는 아라비아 반도에 흩어져 사는 여느 아랍인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은 후천적으로, 시오니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나라 없는 이들의 투쟁 동력이기도 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이후 1993년 오슬로 협정까지 근 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이스라엘 타도를 목표로 했다.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공격적인 구호도 내걸었다. 요르단 강에서부터 지중해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팔레스타인이 반드시 되찾겠노라는 다짐으로, 이스라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냉전 해체는 변곡점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1991년 마드리드 다자 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2년 후 오슬로 협정은 기존 틀을 바꾸었다. 시오니즘을 신봉해온 이스라엘은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이라는 과감한 변화를 수용했다. 소련의 위협이 없어지면서 이제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를 낮출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했다.

팔레스타인 역시 미국의 압도적 힘을 의식했다. 전통적 지지 세력이던 소련의 해체는 두려운 변화였다. 이제는 일부 지역에서나마 국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판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불거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위기의식이 오슬로의 ‘두 국가 해법(Two state solution)’을 태동시켰다.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AFP PHOTO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가운데)이 11월15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를 소집했다.


자연스레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개념이 핵심 주제가 되었다. 국가 구성의 3대 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 모두에서 만만찮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슬로의 두 국가 해법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국가 구성 요소를 실제로 구현하는 게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먼저 주권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대개 국제사회의 승인을 통해 구체화되곤 한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주력은 아랍연맹 그리고 범이슬람권 국가들이다. 팔레스타인은 특히 아랍의 힘을 통해 다자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냉전기에 아랍은 변함없이 팔레스타인 편이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 멸절 투쟁을 벌일 때도 이들은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아랍 처지에서는 식민주의의 질고를 진 팔레스타인을 편드는 게 당연했다. 이른바 ‘팔레스타인 대의(Palestine cause)’였다.

힘 잃어가는 ‘팔레스타인 대의’

그러나 최근 아랍의 팔레스타인 대의가 약해지고 있다. 이란의 부상 때문이다. 아랍의 맏형을 자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스라엘 멸절 투쟁을 하던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영토 분리를 통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기로 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수 아랍 왕정의 주적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노선도 이런 흐름에 한몫 거든다. 아랍 주류의 미묘한 태도 변화는 팔레스타인 정치권의 위기의식을 가중시키고 있다.

남은 두 요소는 국민과 영토다. 영토는 현재로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구 안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정착촌을 철수할 의지가 전혀 없다. 서안 지구와 이스라엘을 가르는 경계 안쪽을 묘하게 파고들어 와 있는 장벽도 문제다. 팔레스타인의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간 통행 보장도 무망한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집권 파타와 가자 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 문제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대사관 이전으로 크게 논쟁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Reuter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26일 유엔본부에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토 요소는 지도를 펼쳐놓고 따져볼 수라도 있다. 서로 양보를 하려 하지 않아서 그렇지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킬 수는 있는 쟁점이다. 반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서 더 뿌리 깊은 난제는 국민 요소다. 하나의 국민 정체성을 가진 ‘팔레스타인 국민’을 기대할 수 있을까? 회의가 적지 않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미묘하게 달라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과 처지가 지난 70년 동안 굳어졌다. 언뜻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투쟁하며 똘똘 뭉친 단합 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속살은 사뭇 다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크게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 서안과 가자 지구 등 자치 지구 주민, 그리고 동예루살렘 거주민 등으로 나뉜다.

 

 

 

 

먼저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로 독립한다고 해도 신생국 국민으로 기꺼이 이동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보인다. 이미 이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생활 기반을 닦은 사람들이다. 정서적으로야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지만, 열혈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가 아닌 이상 생업을 포기하고 신생국가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

애매한 사람들은 동예루살렘 거주민들이다. 동예루살렘은 현재 이스라엘이 관할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를 만든다면 팔레스타인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들은 일단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한다. 그러면서도 생활 근거지가 주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독립에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지금은 중간자적 신분이지만, 후일 팔레스타인 국민으로 확정되는 순간 이들 역시 생활 터전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동예루살렘 프렌치힐에 잇닿은 아랍 마을 ‘이싸위야’에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서 일하는 교수와 직원들이 적지 않게 살고 있다.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을 원한다. 그들은 점령 체제로 인해 이스라엘의 수탈이 지속되는 현 상황을 혐오한다. 주권국가 수립의 주축이 바로 서안 지구 주민들이다. 이 안에도 원심력이 작동한다. 서안 지구 주요 도시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7대 부족 간의 경합과 합종연횡이라는 권력의 분쟁 요소가 있다. 유력 부족 원로들의 내밀한 의사표시에 따른 정치적 결정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 보수파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한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이라는 공공의 적을 앞세워서 서안 지구 부족들의 협력을 이끌고 있지만 막상 독립하게 되면 분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부족들끼리 내전에 준하는 분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이어진다. 서안 지구의 집권 세력 파타와 가자 지구를 장악한 하마스 간 분쟁은 아예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극우 시온주의자들이 농반진반으로 ‘여덟 국가(서안 지구 7대 부족+가자 지구) 해법’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예 부족 단위로 조각내놓아야 딴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다소 무례한 언설이다.

요르단과 ‘국가연합’ 모델 거론

팔레스타인 리더십의 무능과 탐욕도 비관적 전망을 더 무겁게 한다. 노쇠한 마무드 아바스 정부로는 거센 도전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평이 현지의 중론이다. 미래 대안이 있느냐도 회의적이다.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독립했을 때 과연 정부 구성과 권력 배분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질지 팔레스타인 대중조차 회의적이라는 소문도 걸린다.

그나마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주권, 영토, 국민 이슈가 모두 난제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 와중에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안이 있다. 미국이 연말 혹은 내년 초에 새로운 중동 평화 구상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을 볼 때, 어쩌면 완전히 판을 깨버리는 친이스라엘 정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코마 상태에 빠진 ‘두 국가 해법’을 되살릴 극적 요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지만 워싱턴에서 살짝 흘러나온 ‘국가연합’ 모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즉 미국과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을 즉시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유엔의 정회원국으로 받아주는 동시에 요르단과 국가 대 국가로 연합하는 모델이다.

이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역사적 맥락이 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기 전까지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관할이었다. 지금도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이슬람 성지인 하람 알샤리프(황금의 돔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곳)는 요르단이 관리한다. 요르단과의 국가연합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명시한 당시 유엔안보리 결의안 242호도 충족시킬 수 있다.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으로 독립하고 이후 요르단과 국가연합의 형태로 묶으면 된다.

요르단 왕실은 이 모델을 일축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라는 주장이다. 내심 계산은 복잡할 것이다. 만약 국제사회가 오슬로 협정처럼 이 국가연합 모델을 지지해준다면, 그래서 막대한 물적 지원을 요르단에 약속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르단 처지에서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가 부담스럽지만 한 번쯤 검토해볼 만하다. 국가의 격을 올릴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오랫동안 주권국가로 독립하려 준비해온 상황에서 맥 빠지는 아이디어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지만 내심 국가연합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팔레스타인 국가와 긴 국경을 마주하는 것보다야, 1994년 평화협정을 맺은 요르단 왕실을 매개로 안정 국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쪽이 더 나을 수 있다.

중요한 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공공연히 찬반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속내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는 70년 동안 독립을 열망해온 역사가 있다. 국제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국가연합이라는 우회로를 택하라니, 내키지 않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자신들이 세울 나라가 평화 가운데 지속 가능한 성장을 구가하려면 리더십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만약 국가연합이 리더십 안정을 가져다줄 더 나은 방법이라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국가연합 모델은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와 완전히 다른 구상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높다. 지금처럼 교착된 상태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치열한 사유와 고민을 쏟아부을 값어치도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은 곧 중동의 평화이고, 중동 평화는 곧 세계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기자명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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