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감독’을 자처하는 기자에게 ‘여행하는 인문학자’ 공원국 작가는 질투가 나는 사람이다. 그는 풍경 사냥꾼처럼 경치 좋은 곳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지정학이나 지역학을 바탕으로 그 사회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신화를 채집하고 다닌다.
그의 전작 〈유라시아 신화 기행〉 (민음사)에는 6개월 동안 유라시아 대륙 2만5000㎞를 돌며 채집한 신화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초원의 깊은 이야기를 간직한 이야기꾼을 찾아 길잡이를 계속 바꿔가며 몽골의 초원을 달렸을 만큼 집요하게 모았다. 중국 푸단대학에서 유목민족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 유목민처럼 유랑했다. 그렇게 유라시아의 이야기꾼을 두루 섭렵하며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서 소설 한 편을 써냈다. 바로 〈가문비 탁자〉다.
〈유라시아 신화 기행〉에는 이야기가 너무 넘쳐서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감정과 감상이 과잉되어 약간 거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곳에 가서 저런 사람을 만나면 나 또한 저런 감정과 감상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번 〈가문비 탁자〉는 달랐다. 그런 감정과 감상이 사연을 만나니 훨씬 묵직하게 다가왔다. 티베트 고원의 서사가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들어왔다.
공 작가의 집요한 점은 오지를 순수의 공간으로만 보지 않고, 대자연의 한복판까지 파고든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응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생선에서 가시를 발라내고 살코기에서 비계를 떼어내듯, 어떤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사랑과 양심을 소환해낸다. 지진으로 무너진 동네에서 굳세게 버틴 가문비 탁자처럼 말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공 작가는 탄광으로 오염된 키르기스스탄 사리모골 마을을 생태마을로 바꾸는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책의 수익금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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