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여자와 남자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자는 왼쪽 어깨 뒤를 돌아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합니다. 남자는 오른쪽 어깨 뒤쪽에 있는 화산을 봅니다. 화산이 폭발한 다음인가 봅니다. 화산재가 소복하게 쌓인 곳을 두 발로 걸어갑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모습입니다. 둘 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걷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은 20세기 고인류학에서 이룬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리한 이후부터 인류의 기원은 고인류학자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는 주제입니다. 다윈은 현대인이 다른 동물, 특히 유인원과 비교해서 네 가지 특이한 점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보았습니다. 도구의 제작과 사용, 큰 머리, 작은 이, 두 발 걷기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큰 머리는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가능하게 했고, 도구를 쓰니까 이가 작아졌고, 두 발로 걸어 두 손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목적은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서였다고 시사했습니다.

ⓒHiroshi Sugimoto/div〉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그림.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320만 년 전이라는 연대로 봐서 초기 인류이긴 했습니다만 인류 최초의 조상에 대해 가졌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렸습니다.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고(발굴된 도구가 없습니다), 머리는 작았으며(400㏄ 정도로, 어른 침팬지 두뇌 용량과 비슷합니다), 이도 컸습니다. 인류답지 않기 때문에 인류인지 의심스러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인류라는 판정을 받은 결정적인 증거는 두 발 걷기였습니다.

인류에게 두 발 걷기가 특징이라고 하지만, 두 발로 걷는 짐승은 의외로 많습니다. 이들과 인류의 두 발 걷기가 다른 점은 인류는 두 발로만 걷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짐승은 두 발로도 걷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움직이죠. 날거나, 헤엄치거나, 뛰거나, 네 발로 걷고 뜁니다. 나무 타기도 합니다. 인류는 두 발로만 걷고 딱히 다른 방법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류의 골격에는 두 발 걷기로 특화된 생김새를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골반과 다리뼈, 발뼈에 많이 나타납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 그림이 문제가 된 까닭

 

 

 

ⓒAP Photo320만 년 전 직립보행하며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루시’가 대표적으로 유명한 화석입니다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아파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화석은 무릎 관절을 이루는 허벅다리뼈 아래쪽과 정강이뼈 위쪽입니다. 무릎 관절에서 두 발 걷기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걷는 인간은 몸무게를 네 다리가 아닌 두 다리로 지탱합니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한쪽 다리에 몸무게가 실리게 되죠. 그래서 무릎 관절이 편평하고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두 발 걷기를 하는 인류의 무릎은 자유로운 움직임보다는 체중을 안정적으로 받치기에 더 적합합니다. 그리고 골반에서 무릎으로 내려오는 허벅다리가 수직이 아니라 살짝 안쪽으로 각도를 이루면서 내려옵니다. 역시 몸무게를 한쪽 다리로 받칠 때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르에서 발견된 무릎 관절의 모습은 두 발 걷기로 특화된 모습으로 딱 들어맞습니다.

이어서 아파르보다 남쪽인 탄자니아 래톨리에서 발자국이 발견되어 두 발 걷기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래톨리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엄지발가락이 가장 크고, 다른 발가락들과 같은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유인원은 발가락이 손가락과 비슷합니다. 엄지발가락이 엄지손가락처럼 작고 옆으로 나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돌려서 둥근 나뭇가지를 잡듯이 엄지발가락으로도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습니다. 나무 타기를 할 수 있는 생김새죠. 유인원은 두 발, 두 손이 있다기보다는 네 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두 발 걷기를 하는 인류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엄지발가락에 모든 몸무게를 싣게 됩니다. 그래서 엄지발가락이 크고 튼튼합니다. 래톨리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은 360만 년 전에 벌써 크고 튼튼한 엄지발가락으로 두 발 걷기를 했음을 알려줍니다.

최초의 인류가 두 발로 걷는 것 외에는 유인원과 별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은 고인류학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습니다만 격렬한 논쟁 끝에 학계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연사박물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전시는 바로 래톨리에서 화산재를 두 발로 밟고 걸어가는 최초 인류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시물에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몸집이 큰 개체는 남자로, 몸집이 작은 개체는 여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왼팔을 올려서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습니다. 래톨리의 발자국 화석으로 돌아가 볼까요?

래톨리의 발자국은 두 명 아니면 세 명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큰 발자국의 주인공, 또 하나는 작은 발자국의 주인공입니다. 사람들은 큰 발자국이 남자이고, 작은 발자국은 여자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발자국은 큰 발자국보다 깊습니다. 이것은 수수께끼입니다. 발이 작다면 몸집도 작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발자국은 큰 발자국보다 깊을 수 없습니다.

작은 발자국이 왜 깊은지에 대해 고인류학자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꼬마가 엄마 발자국을 따라 종종 뛰었다는 시나리오입니다. 또 하나는 여자가 무엇인가를 지고 있었다는 시나리오입니다. 여자가 지고 있었을 짐은 가재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최초의 도구는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주변에 있는 재료로 그때그때 만들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무게가 실립니다. 여자가 지고 있었을 짐은 도구는 아닐 것입니다. 채집한 먹거리이거나, 임신하여 몸이 무겁거나, 아이를 안고 있어서 몸이 무거웠다는 시나리오가 제시되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그대로 래톨리 발자국을 토대로 한 상상도에 반영되었습니다. 한 쌍의 남녀가 폭발하는 화산을 뒤로하고 두려워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그린 그림 ‘실낙원’을 연상하게도 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상상도는 박물관과 책의 수많은 곳에 인용되고 재현되었습니다.

 

 

ⓒAP Photo2016년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발표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발자국 화석.


발자국 주인공이 남자와 여자일 것이라는 추정도, 큰 몸집은 남자, 작은 몸집은 여자일 것이라는 추정도 자료가 뚜렷하게 뒷받침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 옆에서 뛰어가는 어린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이나 교과서에 실리는 그림은 예외 없이 몸집이 큰 남자와 몸집이 작은 여자입니다. 남자는 앞서가고 여자는 뒤따라갑니다. 뒤따라가는 여자는 임신하여 몸이 크거나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앞서가는 남자는 큰 몽둥이를 들고 있습니다. 적대감을 가진 상대가 나타나면 몽둥이로 자신과 여자를 지킨다는 뜻일까요?

앞서가는 고인류 여성의 표정은 ‘불안’

남자가 앞서가지 않는 그림도 있습니다.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 경우, 남자가 팔을 둘러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습니다. 뒤쪽에 있는 화산에서 재가 뿜어져 나옵니다. 무서워하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든든한 보호자 노릇을 한다는 뜻일까요?

드물지만 여자가 앞서가는 그림도 있습니다. 이 경우 앞서가는 여자 뒤에서 따라오는 남자의 표정은 알 수 없으며 그림에는 불안감이 감돕니다. 앞서가는 여자는 뒤돌아봅니다. 뒤돌아보는 여자의 표정은 불안해하는 모습입니다.

360만 년 전의 인류가 두 발로 걸었다는 것은 자료로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가 두 발로 걸으면서 그려내는 사회적 관계는 우리가 상상해낸 것입니다. 이 상상에는 우리가 현재 사는 사회에서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모습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처럼 우리 관심을 자극하는 주제는 과학과 가설의 세계에서 자료로서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책에서 나오는 삽화나 박물관 전시물에 발자국이나 무릎뼈만 덩그렇게 전시해놓고,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사회에 전달되는 학계의 견해는 상상을 통해 다시 살아난, 살아 있는 모습입니다. 살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과거에는 현재의 우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집니다. 발자국은 자료이지만, 우리가 그려보는 고인류의 모습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 문화를 이루는 가치가 개입합니다. 고인류 두 명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연상되는 남녀 한 쌍은, 여자를 감싸 안는 남자의 모습은, 360만 년 전 고인류라기보다는 21세기 사회의 젠더 관계가 그려낸 장면입니다.

상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대한 상상에 오늘의 전제가 들어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검토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상상의 근원 자체를 다양하게 열어놓는 방법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다양한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중 자료와 비교하고 자료로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이 나오게 됩니다.

2016년 초기 인류의 새로운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1976년에 발견된 탄자니아 래톨리 발자국에서 겨우 150m 떨어진 곳에서 찾아낸 발자국은 두 명이 남겼습니다. 그중 하나는 첫 번째 발자국을 남긴 인류보다 몸집이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이 발자국이 남자이고 이전의 발자국은 모두 여자일까요? 아닙니다. 몸집이 크면 남자, 작으면 여자라는 가정부터 되짚어봐야 합니다.

기자명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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