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철근으로 세워진 가림막이 동네 가장자리를 모두 에워싸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이대역을 잇는 대로변에서 불과 5m 이내에 있었지만, 장벽 너머 풍경은 가로막혀 있었다. ‘철근 장벽’이 이어진 길목을 지나자 건축자재들이 나뒹구는 황량한 공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부 구조를 훤히 다 드러낸 빈집들 앞으로 가재도구며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stop gentrification.’ 떨어진 문짝 위로 누군가가 휘갈겨 쓴 붉은 글씨가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재건축 사업으로 강제 철거가 진행된 아현2구역이었다.

이곳에서 고 박준경씨(37)가 살았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 10평(33㎡) 남짓한 한옥집이었다. 9월6일 강제집행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그는 어머니 박 아무개씨(60)와 그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은 박준경씨에 대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다”라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12월4일 주검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씨는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발견됐다. 박준경씨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박준경씨의 죽음 이후 12월7일 마포구청은 공사를 전면 중지한다는 행정조치를 내렸다.


ⓒ시사IN 신선영12월12일 열린 고 박준경씨 추모 집회에서 박씨의 어머니(가운데)가 오열하고 있다.


12월13일 현재 아현2구역은 네 가구만이 남았다. 한때 2357가구가 살았다. 인적 드문 골목길은 스산했다.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부진 체격의 20대 남성들이 골목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곳에 상주하는 용역 직원들이었다. “여기 들어오면 안 됩니다.” 용역 직원들은 “일반인이 건물 내부로 못 들어가게 관리하고 있다”라며 길을 막았다. 아현2구역에 남아 있는 한 주민은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 이주를 종용하는 것이다. 용역들이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라고 말했다.

아현2구역 재건축조합은 2013년 8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2016년 6월 관리처분인가가 내려지자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문제는 재건축 사업은 재개발과 달리 민간사업으로 분류돼 세입자 이주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가옥주들은 50년 이상 장기 거주한 노인층이 대다수이고, 세입자는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이주해온 경우가 많다. 한 공인중개사는 “여기는 도심 안에 있는 달동네다”라고 말했다. 숨진 박씨를 기억하는 공인중개사도 있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씩 하는 데가 대부분이다. 대책도 없이 세입자들을 쫓아내면 어려운 형편에 당장 어디에 가서 살겠느냐. 박씨 가족은 10년 전 이 동네에 들어올 때부터 보증금 200만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얻으러 왔다. 그때부터 10년이 흘렀는데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집을 구하겠나.”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아현2구역에 대한 24차례 강제집행이 진행됐다. 집행이 완료되면 철거민들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집 내부에 소화기를 분사하고 오물을 뿌렸다. 지난 9월6일 강제집행 이후 살던 집에서 쫓겨난 박준경씨와 그의 어머니는 아현 재건축 지역을 떠나지 못하고 전전했다. 비슷한 금액의 월세 방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세입자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은 이웃집에서 버틸 작정이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아래)에는 12월13일 현재 네 가구만이 남아 있다.

“박준경씨 죽음은 사회적 타살”

11월이 되면서 강제집행의 강도가 세졌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동절기 강제 철거(강제집행)가 금지된다. 그래서 12월이 되기 전에 마무리 짓기 위해 무차별적인 강제집행이 이뤄졌다고 철거민들은 기억한다. 이광남 위원장은 “11월에 진행된 강제집행은 특히 더 무자비한 폭행이 난무했다”라고 말했다.

11월1일 용역 직원 200여 명이 급습해 건물 옥상과 맞은편 건물에서 소화기를 난사하고 망치로 유리창을 깨부쉈다. 서울시 인권지킴이단 없이 이뤄진 집행이었다.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에 따르면, 강제집행은 시·구청 공무원과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인권지킴이단의 참관하에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재건축조합은 강제집행 48시간 전에 구청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강제집행은 신고된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전에 감행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마포구청에 두 차례 공문을 보냈다. 공사 중지 명령 및 인가 취소 등의 행정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강제집행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 마포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마포구청의 한 관계자는 “집행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조합 측은 ‘법대로 한 것’이라고 말하고, 구청과 시청도 ‘현행법 내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개발 사업이 지역 거주민에게 끼칠 영향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아현2구역은 지난 5월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이 공식 방문했던 곳이다. 당시 레일라니 파르하 특보는 “아현2구역이 그렇게 낡은 주택지로 보이지 않는데 개발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세입자 대책이 없다는 건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방한 이후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국제인권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강제 퇴거 행태의 위중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옮길 이웃집 자체가 줄어들자, 박준경씨와 어머니는 떨어져 지냈다. 어머니는 이광남 위원장의 집에서, 박준경씨는 아현2구역의 빈집에서 버텼다. “12월이 되면 잦아들 테니 조금만 참아보자.” 당시 이광남 위원장이 박준경씨를 만나 했던 말이었다. 12월을 하루 앞둔 11월 마지막 날, 용역 직원들이 박준경씨가 머물던 빈집에 들이닥쳤다. 한 철거민은 “준경씨가 법에 의해 이런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된다는 것에 깊은 좌절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내가 사는 현실이 이렇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런 직후 어머니는 근처 편의점 앞에서 박준경씨를 만나 돈 5만원을 쥐여주었다. 어머니와 준경씨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흘 뒤 그는 어머니에게 임대주택을 마련해달라는 바람을 유서에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12월6일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에 차려진 박준경씨의 빈소. ‘박준경씨 죽음은 무리한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어머니 박 아무개씨는 “내 희망인 아들을 잃었는데 임대주택을 주면 무슨 소용인가.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쪽 벽면에는 애도를 표하는 시민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어머님, 함께 울겠습니다. 애도하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12월12일 마포구청 앞에서 열린 추모 및 투쟁대회에 용산참사 유가족 전재숙씨도 함께했다. 전씨는 “오는 1월20일이면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째 된다. 철거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변한 게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