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에서 열리는 창업 관련 행사를 준비할 때였다. 참석자 섭외를 위해 한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교수님께 여쭤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시간은 되는데, 교수님 허락을 받아야 해서요.” 대학원생들의 생활이 지도교수 손에 좌지우지된다고는 들었지만, 한 시간 남짓 진행될 간담회에 참석하는 데 교수 허락까지 필요하다니 좀 의아했다.
창업 보육(인큐베이팅)이나 산학협력 프로그램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지도교수의 눈치를 보던 학생의 처지가 이해됐다. “학생 창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뭔지 아세요? 바로 지도교수와 부모입니다.”
많은 대학들이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기업가 정신을 함양시키겠다며 관련 강의를 신설하고 창업 동아리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창업 휴학을 인정해주고 창업 대체학점 제도를 도입하는 등 창업에 따른 학생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학사제도를 바꾸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미국 IT 회사들의 차고(개러지) 창업을 모방해 창업 활동 전용 공간을 조성하고 그럴듯한 영어 이름을 붙인 대학들도 있다.
정작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다. 창업을 장려하는 요즘 분위기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교수들이 의외로 많다. 교수들은 연구와 강의, 논문 발표에 능하지만 창업의 길을 직접 걸어본 적이 없는 이들이다. 일단 교수가 되면 모험보다는 안정 지향적인 선택에 길들여지기 쉬운 데다, 창업한 교수를 ‘돈 벌려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교수들에게 어린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어쭙잖게 보이고, 창업은 좋게 봐야 ‘젊을 때 잠깐 해보는 일’ 정도로 여겨진다.
지도 학생의 창업을 교수 업적평가에 반영하는 제도가 도입되는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연구실 학생이 창업에 나서거나 산학협력 현장실습 교과목을 수강한다며 자리를 자주 비우는 것보다, 진행 중인 연구과제에 더 적극 참여하고 규정 학기 안에 학위를 받아 자기 실적에 보탬이 되는 것이 교수에겐 더 익숙하고 편하다.
아직 ‘창업=자영업’이라는 인식이 강한 부모들은 비싼 등록금 들여 졸업하고 석사·박사 학위 받아서 불확실한 창업에 뛰어드는 자녀가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취업을 위한 경력 쌓기라면 한 번쯤은 모를까, 적극 창업을 권하고 응원하는 집안 분위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창업 사관학교’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
대학 처지에선 정부 사업비나 자체 예산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당장 뚜렷한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니라 고민이 많다. 매출·영업이익·고용 인원 같은 실적을 보여주려면 어느 정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데, 숫자로 된 실적을 기다리는 정부나 옆에서 지켜보는 대학 구성원들은 마음이 급해 보인다. 연간 얼마 되지 않는 창업 기업 수, 창업교육 프로그램 참여 인원,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개최 횟수 등 숫자를 그러모아 실적을 포장한다. 하지만 ‘창업 사관학교’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구체적인 성과가 미약하고 창업에 대한 인식 전환은 쉽지 않다.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창업 전진기지’로 전락했다는 자조나, 대학들이 사업비를 따내기 위해 ‘한국판 스탠퍼드 대학’ 운운하며 흉내만 낸다는 비판을 잘 안다. 하지만 청년들이 제 꿈을 펼치기는커녕 꿈조차 갖기 어려운 시대, 창업에 뜻을 품은 학생들의 노력과 도전 자체가 나는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비록 조금은 어설퍼 보이더라도, 대학과 사회가 비용을 지불하기에 그 가치가 충분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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