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제공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㉔ 방준석

 

 

 

방준석은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음악 감독이다. 그가 작업한 작품은 〈신과 함께〉 1·2편부터 〈사도〉 〈베테랑〉 〈라디오스타〉 〈공동경비구역 JSA〉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굵직굵직한 영화들이다. 1994년 모던록 밴드 ‘유앤미 블루’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그는 록의 문법에 더해 클래식, 국악까지 아우르며 영화마다 다양한 서정을 입혀온 작품들로 청룡영화상 음악상 두 번, 대한민국영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가 발표한 영화음악과 음반은 역시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화가이자 뮤지션 백현진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 ‘방백’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유앤미 블루’에서 최근의 ‘방백’까지 그의 작품을 시간에 따라 듣다 보면 그의 음악이 변모해온 여정이 남다르다. 음악은 때로 어떤 한 개인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격렬히 투쟁한 삶의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 〈사도〉의 ‘만조상해원경’에서 보여준 주술과도 같은 사운드는 그만큼 강렬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에게 그런 소리의 변화가 생긴 걸까? 김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삶을 바꾸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기용: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방준석:‘방백’의 공연팀 8명과 김포 작업실에서 신곡 녹음 작업을 종종 하고 있다.

이기용:10대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

방준석: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를 따라 칠레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혼자 있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여러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무대 위의 밴드들이 참 많다. 아마 밴드라는 것이 내겐 막연하게나마 뭔가 이상적인 모습이었나 보다. 고등학생 때 밴드를 만들어 칠레의 여기저기로 불려 다니며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남미 사람들 특유의 뜨거움으로 우리 음악에 시끌벅적하게 소리치고 박수쳐주었다. 그런 모습에서 그들에게 환영받고 격려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참 좋았다. 그렇게 점점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기용:이승열씨와 함께한 ‘유앤미 블루’의 음반은 한국 모던록의 고전으로 꼽힌다. 벌써 20년이 넘은 일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가?

방준석:뉴욕에서 대학 다닐 때 이승열을 만났다. 그렇게 둘이 의기투합해 밴드 ‘유앤미 블루’를 만들었지만, 정작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관객이 한 명이거나 아무도 없을 때도 있었다. 나중에 우리 음악을 좋게 평가해주어 감사하지만, 당시 ‘유앤미 블루’는 나나 승열이에게 좋은 기억보다 힘든 기억이 훨씬 많다.

이기용:영화 〈사도〉 음악을 들으며 인터뷰하러 왔다. 많은 것을 통과한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방준석:6년 전쯤 암에 걸렸다. 좀 고약한 형태의 위암이었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수술을 권했지만 나는 수술과 항암치료 등을 거부하고 자연치유법을 택했다. 지금은 다행히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회복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던 중, 몸이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내가 튀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자존감도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기 같은 것이었다.

이기용: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음악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

방준석:좋은 소리를 좋은 의도로 음악에 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음악이란 사람의 마음이 실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래서 작은 소리 하나에도 더 정성을 기울였다. 영화계는 ‘가성비’가 중요한 곳이지만 나는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더 많이 투자했다. 더 좋은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것이 누군가에게 가서 좋은 일이 될 거라는 믿음에서다.

이기용:작업실 테이블 위 여러 과학자나 철학자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방준석:예술가란 늘 경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탐험하는 사람들 같다. 우리가 애초 음악을 하게 된 것도 ‘사회에서 이곳이 중심이야’라고 말하는 가치관에 대해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내가 몸과 마음이 아픈 와중에 꽂힌 게 노자와 장자였다. 양자물리학에도 흥미를 느끼게 돼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데이비드 봄, 닐스 보어, 조셉 캠벨, 카를 융 등의 책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신화가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지?(웃음).

이기용:지금 음악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영화라는 게 신화의 속성과 닮았다는 뜻인가?

방준석:그렇다. 사람들이 신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라고 생각한다. 〈스타워즈〉는 영웅이 부름을 받아서 어떤 여정을 겪으며 적을 무찌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관객들은 두 시간 안팎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영화의 틀이 바로 신화의 틀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가 주입받은 세계관은 너와 나는 경쟁해야 한다는 분리된 세계관이지만, 신화는 우리 모두 결국 하나이고 다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이다.

이기용:영화 〈사도〉부터 국립국악원과 작업한 국악극 〈꼭두〉 등 우리 전통음악과 관련한 작업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했다. 특히 〈사도〉에서 ‘만조상해원경’은 토속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방준석:〈사도〉 시나리오가 처음 나왔을 때 정조가 춤을 추는 후반부 장면에서 사실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웃음). 이준익 감독과 상의한 끝에 출구를 찾았다. 나는 〈사도〉의 국악 부분을 트랜스(trans) 음악이라고 이해했다. 즉 어떤 경계를 넘어가는 것 말이다. 사물놀이나 테크노 음악이나 아프리카의 타악기 리듬이나 다 트랜스적인 면에서 보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토속음악 안에 모든 음악의 요소가 이미 들어 있다는 생각에 〈사도〉에 나오는 국악 ‘아모리’ 부분을 만들었다.

그는 몇 년 전에 있었던 시련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겪어온 것들은 자신의 예민한 음악적 촉수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음악으로 변모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짧게 줄이면, ‘느끼는 자’에서 무엇인가를 ‘통과한 자’로 그가 바뀌어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가 작업 중인 ‘방백’의 다음 앨범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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