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의 맛〉 신이현 글·김연수 그림, 우리나비 펴냄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로 유명하다. 푸아그라, 바게트, 부야베스, 라타투이 등을 ‘프랑스 요리’로 인식한다. 한국만 해도 ‘한식’ 한 가지로만 부르기는 어렵다. 지역마다 특산물이나 유명한 요리가 따로 있다. 평양냉면, 전주비빔밥처럼 음식 앞에 지역 이름이 붙는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라면 훨씬 특색 있는 요리가 지역마다 발달하지 않았을까?

〈알자스의 맛〉은 우리를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로 불러들여 풍성한 식탁을 선보인다. 알자스는 독일과 국경을 맞댄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이다. 한국 여자 현은 프랑스 남자 도미와 결혼해 파리에 산다. 도미는 알자스 출신으로, 아내와 함께 자주 알자스를 방문한다. 시어머니 루시는 일생이 한 권의 ‘알자스 요리책’이라 할 수 있다. 루시는 무거운 솥으로 요리를 하느라 손에 늘 압박붕대를 감고 있다. 시아버지 레몽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준비해야 안심한다. 레몽은 루시가 만들 요리의 재료를 준비하지만, 일이 끝나기도 전에 접시를 치워 늘 잔소리를 듣는다.

 

 


크리스마스를 깨우는 ‘오르게’ 굽는 냄새

 

 

 

파리에서 알자스는 멀다. 길이 막혀 늘 새벽녘에 출발해야 한다. 파리를 떠나, 넓은 벌판을 거쳐, 여섯 시간 넘게 달리면 마침내 알자스에 도착한다. 피곤한 그들 앞에는 알자스의 맛으로 가득한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푹 익힌 절인 양배추와 수북이 쌓아놓은 삶은 훈제 돼지고기 넓적다리, 다양한 소시지로 만든 슈크루트. 체리 꽃 향이 나는 차가운 알자스 백포도주를 한 모금 곁들이면 한 솥 가득하던 슈크루트가 금세 사라진다.

 

크리스마스에는 아침부터 온 가족이 모여 오르게를 만든다. 발효된 반죽에 말린 과일을 골고루 뿌린 다음 오븐에 넣어 굽는 빵이다. 또 화산 모양의 빵 고골로프를 굽는다. 루시는 살면서 고골로프를 2000개는 구웠을 거란다.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는 최소 4가지 단계를 거친다. 아페리티프라는 식전술을 마시고, 전식으로 샐러드, 본식으로 스테이크를, 마지막으로 디저트까지 먹는다. 식사만큼이나 긴 겨울이 지나면 봄, 여름, 가을의 변화와 함께 요리도 변한다. 부활절에는 초콜릿 바구니를 숨기고, 여름에는 잼을 만들고 와인 축제를 즐기며, 가을이 오면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간다. 이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알자스의 맛〉은 다채로운 알자스 요리를 통해, 서로 무지하던 한국인 며느리와 프랑스 시골 가족이 적응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씩 하고, 때로는 화가 나서 톡 쏘아붙이고 싶기도 하지만, 함께 둘러앉은 식탁은 그들을 하나로 연결해준다.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사는 얘기를 나누는 알자스 사람들을 보면 꼭 추석 때 일가친척이 모인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한편으론 어디나 비슷하기 마련이다. 내용만큼이나 색연필이 주는 느낌도 따뜻한 그래픽노블이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