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매우 끈덕진 것이어서, 많은 감독이 결국 한 번은, 더러는 여러 차례, 자기 삶의 어떤 시기를 영화에 담는다. 〈칠드런 오브 맨〉과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도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멕시코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고향을 배경으로 새 영화를 찍었을 것이다. 더 미루다가는 애써 싹을 틔운 이야기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시들어버릴까 봐 불안해서, 필생의 프로젝트를 이제는 완성해보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영화 〈로마〉를 빚어냈을 것이다.

공간은 멕시코시티의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 지역. 시간은 1970년부터 1971년까지. 아홉 살 꼬마 알폰소 쿠아론이 열 살이 되어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했던 모든 게 영화에 담겨 있다. 그때의 자신과 비슷한 또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진 않았다. 그를 키워준 유모이자 집안 살림을 도맡았던 하녀가 주인공이다. 영화에선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라고 부른다.

마당에 물을 뿌리고 청소하는 클레오가 첫 장면이다. 건물 틈새가 만든 좁고 네모난 하늘이, 바닥의 고인 물에 비친다. 그 작은 사각형 안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비행기가 보인다. 다시 부은 한 양동이의 물에 어그러지는 네모. 씻겨 나가는 비행기.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을까? 매일 클레오의 손끝에서 몇 대의 꿈이 씻겨 나갈까? 클레오는 평생 몇 양동이의 물로 그 좁고 네모난 가능성을 줄곧 물속에 가두었을까?

〈로마〉는 ‘트루 시네마’다

그런 생각이 차례로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동안, 카메라는 계속 클레오를 따라다니며 집안 이곳저곳을 보여준다. 감독이 어릴 적 실제로 쓰던 가구들로 채운 집안 세트를 벗어나 클레오가 거리로 나가면, 감독이 기억하는 그 시절 멕시코시티의 소음을 꼼꼼하게 재현한 사운드 디자인이 햇살처럼 영화에 쏟아진다. 1970년대 격동의 멕시코 현대사가 마당이라면, 감독의 어린 시절을 닮은 어느 멕시코 중산층 가족의 사연은 그 마당 위에 고인 작고 네모난 하늘. 클레오의 녹록지 않은 삶이 그 사각형의 한복판을 비행기처럼 가로지르는 이야기.

어떤 영화는 무비(movie)라는 말이 어울리고 어떤 영화엔 필름(film)이라는 말이 어울리는데, 또 어떤 영화는 시네마(cinema)라고 부르게 된다. 그 셋의 차이를 또렷하게 구분할 재간이 내겐 없다. 다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로마〉는 ‘시네마’라는 거. 감히 트루 시네마(true cinema)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올해 만난 가장 ‘영화적인 영화’다. 모든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순간이 정말 컬러풀한 흑백영화다.

65㎜ 필름 카메라로 감독이 직접 촬영하고 최첨단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완성한 이 작품은 12월12일부터 일부 극장에서 상영되며, 12월14일부터는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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