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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이 쏘아 올린 작은 공

2018년 12월 28일(금) 제589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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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올해의 인물은 서지현 검사다. 우리는 이제 서 검사가 만든 다리를 통해 다음 단계 민주주의로 갈 수 있다. ‘미투’ 직후 ‘스피크위드유’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승섭 교수가 서 검사를 만났다.

‘미투’는 법과 제도 안에서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서지현 검사의 미투는 성범죄에 한해서는 법조인도 사법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졌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평생 쓸 수 있는 용기를 다 끌어내” 건넨 이야기였다. 안온하게만 보였던 세계를 부수고 나온 ‘서지현의 1년’을 통해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바뀌고 또 바뀌지 않았을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우리는 이제 서지현 검사가 만든 다리를 통해서만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로 건너갈 수 있다. <시사IN>이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 검사를 선정한 이유다.
부조리에 홀로 맞서 싸울 때 겪는 고통은 몸에 새겨진다. 인터뷰어로 나선 김승섭 교수(고려대 보건과학대학)는 서 검사의 미투 직후 연구팀과 ‘스피크위드유(Speak with you)’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을 조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조사 방법론을 공유하기 위한 워크숍이었다. 데이터를 만지는 사람으로서, 또 사회역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미투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이 싸움에서, 그 짐을 나누어 짊어지는 길을 찾고 싶었다.
서지현·김승섭의 만남은 12월5일 <시사IN> 편집국에서 이뤄졌다. 서 검사는 인터뷰 전 미리 건넨 사전 질문지에서 원고지 70장에 달하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 답변을 바탕으로 진행된 인터뷰는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도록 이어졌다.

ⓒ윤무영
서지현 검사(왼쪽)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저 원더우먼처럼 찍어주세요” 라고 말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김승섭 교수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생존자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섭:서 검사가 ‘미투’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저는 데이터를 만지는 사람이니까 학자로서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스피크위드유’라고 워크숍을 했어요. 막상 해보니 그 자리에 모인 수십명의 사람들이 서 검사가 입을 열기 전까지 말 못했던 일이 각자에게 너무 많은 거예요. 서 검사가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가 입을 열 수 있게 됐구나 싶었어요.

서지현:특히 여성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해주었어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면 손가락질하고, 온갖 음해에 시달리니까 두려웠다고. 그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검사라는 사람도, 여성이지만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런 일을 겪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걸 보면서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대요. 사실은 제가 입을 연 이후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조바심 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게 어쩌면 가장 큰 변화가 아닌가 생각해요.

김승섭:비슷한 맥락에서 서 검사가 쓰는 글을 보면 ‘성실한 직장인’이었음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느낌이 들어요. 되레 피해자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랄까요.


서지현:처음에 제가 검사 게시판에 글 올리기 이전에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었어요. 분명 (내부에서) 사람들이 나를 음해하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아예 ‘예상되는 문제’를 밝혀 쓰면, 그래도 미리 예상하면 고통이 덜하지 않을까 했는데(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떤 음해에 대해서도 내가 검사니까 다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법무부나 검찰 반응은 예상했고, 예상한 대로 너무 정확해서 그런 음해가 떠돌 때 좀 우습기도 했어요. 진부한 사람들, 정말 창의력이라곤 없구나(웃음). 그래서 그냥 이런 우스운 이야기들은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곧 사라지겠지, 그리고 거짓의 힘이 진실의 힘보다 클 수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누가 욕하면 해명하고 싶었어요. 어느 순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해명하든 저들은 또 음해를 하겠죠.

김승섭:안희정 전 지사 비서였던 김지은씨 사례만 봐도 성실히 일했던 게 문제가 됐잖아요. 이분이 피해를 경험하고도 똑같이 업무를 했던 게 피해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됐죠.

서지현:제가 한동안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안 한 이유이기도 해요. 피해자가 ‘나는 완전히 무결하다’라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피해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굉장히 엄격한 기준으로 피해자를 다루잖아요. 검찰 출입기자들은 보통 일반 검사와는 만날 일이 없어요. 간부급하고는 회식도 자주 하고 형·동생처럼 지내는 이들도 있다고 해요. 자주 술 마시고 형·동생 하고 지내는 사람 말을 믿지, 전혀 알지 못하는 저를 믿을 가능성은 더 낮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나온 말들을 팩트체크라는 이름으로 일일이 물어보는데, 정말 너무 모욕적이었어요. 새벽이건 밤중이건 쉴 새 없이 전화기가 울리고 메시지가 오고, 제 가족의 직장까지 찾아왔어요.

ⓒ이명익
8월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안희정은 유죄다’라는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승섭: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전형적 이미지가 있고 이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순간 가차 없는 것 같아요. 고 백남기씨 유족 백도라지씨만 봐도, 아버지를 잃은 슬픈 자식의 모습을 원하는 식으로요.

서지현:저는 굉장히 잘 웃고 잘 우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기자들이 원하는 대로 말려들기도 했는데(웃음). 다른 피해자들의 기사 내용이나 댓글을 보면, 피해자는 항상 고통받고 있어야 하고 항상 슬퍼야 하고 절대로 행복해선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죽어도 장례식장에서 유족은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농담을 하죠.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저는 피해자야말로 행복해져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김승섭:피해자가 피해를 겪고도 계속 살아가는 현실에 무지한 거죠. 당당하고 확신에 찬 생존자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거 같아요.


서지현:그래서 제가 이번에 여러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저 원더우먼처럼 찍어주세요”라고 했어요.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물어요. 건강 안 좋다던데,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근데 그런 거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약해 보이거나, 슬프고 동정심 유발하는 이미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요. 행복하고 건강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행복하거나 소중한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검찰이, 가해자가 빼앗아가려고 할까 봐 두려워요.

김승섭:미투가 보여주는 건 개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넘어서 실제 어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다는 증거잖아요. 이 폭로를 조직 문화의 문제점으로 가져오지 않고 개인에게 두고서 그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만 계속 물어요. 성폭력이 진공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걸 가능하게 했던 역사와 권력과 문화가 있는 건데, 이런 걸 놔두고서 개인에게 자꾸 짐을 지우고 있죠.

서지현:왜 아직까지 한국은 개인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할까요. 왜 나의 모든 걸 던질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걸까요. 저 역시 더 이상 검사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더 나아가 변호사도 할 수 없을 거고요. 검찰 출신 변호사가 검찰에 밉보이면 변호사로 일하기도 쉽지 않아요. 평생을 모두 내던지지 않고서는, 앞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 없이는, 입을 열 수 없었어요.

ⓒ이명익
8월18일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사법부도 유죄다’라는 문구를 들어 보이며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김승섭:서 검사가 세상에 그 경험을 들고 나올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서지현:용감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정말 정확한 표현이에요. 저는 용기 있고 활발하고 이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제가 이렇게 언론에 나와서 이야기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어요. 그런데 검찰은 100년 넘는 역사를 놓고 봤을 때 바뀐 적이 없어요. 항상 정권 말기에 가면 적폐이자 공범이고, 정권 바뀌면 같이 모습을 바꿔 개혁의 선두 주자가 돼요. 강자만이 정의이고 살아남는 문화 속에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반성이 없죠. 저는 지금도 동료랑 전화나 문자 잘 못해요. 제 개인 핸드폰으로 무언가 검색하면서 두려울 때도 있어요. 검색 기록이 다 남아 있을 텐데 별거 아닌데도 신경이 쓰여요. 또 저희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평균 200건, 초임 때는 400건 정도 사건을 처리했거든요. 1년에 2000~3000건 처리하는데 아무리 해도 완벽하게 잘할 수 없는 숫자잖아요. 1년에 3000건 처리한다고 잡으면 저는 15년을 일했으니까 여태까지 4만~5만 건을 한 건데, 뭔가 트집을 잡으면 잡히지 않을까요?

김승섭:피해를 드러냈을 때 검찰은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는 걸까요? 서 검사가 누구보다 이 문제를 많이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지현:누군가 피해를 이야기했을 때 검찰이 어떻게 반응했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피해를 이야기하기 전에 정의가 바로 섰어야 하죠. 성폭력이나 인사 보복 등 제가 겪었던 일은 이미 범죄예요. 이게 현행 제도하에서 처벌받지 않는 상황 때문에 밖에다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김승섭:제 연구가 주로 사회적 차별이나 모순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말하기’의 중요성을 자주 느껴요.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을 폭로하거나 항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제일 아프거든요. 한국 여성의 경우 심지어 말을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2차 가해를 하는 상황 때문에 아파요.

서지현:검찰 게시판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은둔자로 살아갈 생각이었어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사표도 쓰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살겠다고.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고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법무부가 기자들에게 문자로 입장을 발표했어요. 제 인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내용으로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1월29일에 JTBC와 인터뷰하고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꿈을 꾼 건가? 꿈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제 평생 쓸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다 끌어모아서 그날 인터뷰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그 어떤 용기도 더 이상 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고 있으면 새로운 용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했는데, 제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돼요. 얼마 전 검찰 내부에서 곧은 소리를 냈던 임은정 검사와 이야기했는데, 저도 임 검사에 대해 수년간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결국에는 정치하려고 하는 거라는 얘기, 저도 어느 순간 그렇게 믿고 있었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보니 그런 임 검사도 저에 대해 돌고 있는 루머를 상당 부분 믿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진부한 매뉴얼을 돌리는 것은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이구나. 과연 내가 이 사람들이 진행하는 음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없다고 생각해요.

ⓒ김희지
5월17일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김승섭:자신의 일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흠집 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네요.

서지현:15년 동안 검사로 살면서 제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일을 하도 잘해서 ‘실적의 여왕’이었어요(웃음). 그런데도 어느 순간 저는 능력 없는 검사, 문제 검사가 돼 있더라고요. 누가 그래요. 네가 윗사람들로부터 인사 약속을 받고 8년 동안 참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우리 조직이 피해자에게 인사 약속을 해줄 만큼의 양심만 있어도 좋겠다.’

김승섭:누군가 가해를 저질렀을 때 조직이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계속 가르치는 거거든요. 거꾸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것 역시 가르치는 거죠. 이를테면 ‘말하면 서지현처럼 된다’. 이게 어떤 교과서나 매뉴얼보다도 강한 교육적 메시지가 되는 거죠.


서지현:후배가 그래요. “선배, 지금 검찰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제2의 서지현이 나오는 거예요. 그걸 막기 위해 모든 간부가 일심동체가 돼 선배를 더 이상 욕할 수 없을 만큼 욕하고 있어요.” 성폭력뿐일까요. 검찰에서는 정의롭지 않은 상사의 지시를 거역한 검사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불의를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해야 잘나가요. 대부분의 검사들은 굉장히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무기력한 상태예요. 그것도 메시지죠. 정의를 좇기보다는 명령에 복종해야 출세한다는. 그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검찰은 바뀔 수 없어요.

김승섭:임은정 검사 얘기 잠깐 하셨지만, ‘이 구역의 미친 사람’ 지위를 임 검사가 서 검사에게 물려준 느낌이에요(웃음).

서지현:그거 임 검사가 저한테 해준 얘기예요. 처음 만났는데 그래요, “너무 고마워요, 서 검사님. 지금까지 검찰에서 제일 미친 사람이 저였는데 이제 서 검사예요. 아, 정말 너무 고마워”라고(웃음).

김승섭:저는 그 말이 임 검사가 서 검사에게 건네는 위로였던 거 같아요. 적어도 나만은, 당신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연대랄까요. 그 자리에 함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죠. 그런데 서 검사는, 왜 검사가 되었어요?

서지현:정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검사가 됐을 때 굉장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있었어요.

김승섭:검사로 일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많이 보게 되잖아요. 진실이 승리하지 못하는 상황에 검사가 기여하게 된다든가…. 그럴 때 흔들리지 않으셨나요.

ⓒ김희지
5월17일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서지현:제 나름으로는 최대한 노력했던 것 같아요.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하면 ‘나는 이건 못하겠다, 사표 내겠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고요. 이번 상황이 진행되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아무 힘도 없는 주제에 정의를 지킨다고 대들었던 게 잘못인 걸까. 그리고 검찰은 2018년 현재까지도 법원과 달리 손으로 사건을 배당해요. 부장이나 차장검사가 기록 보고 이걸 누구에게 줄 것인지 결정한다는 거죠. 공소시효가 임박했다거나 복잡한 사건, 악성 문제가 될 여지가 많은 사건은 평소에 말 안 듣는 검사에게 줘요. 실적 내기 좋은 사건이나 정치적인 사건 등으로 결론이 정해져 있으면 말 잘 듣는 검사에게 주고요. 검사 개개인의 일상이 배당에 따라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 자체가 만들어져 있는 거예요.

김승섭:‘나는 소망합니다’ 글에 #미투 #검찰내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썼죠. 이 밖에도 <82년생 김지영>을 여러 차례 인용하고요. 한 사람이 생을 걸고 ‘말하기’를 결심할 때 그 배경에 있었던 것들, 참고문헌이 궁금했어요.

서지현:많은 남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충격과 불편을 느꼈다고 하는데, 저를 비롯한 제 주변의 여성들은 오히려 실망을 많이 했어요. ‘뭐야, 이 정도로 정신병에 걸리다니?(웃음)’ 현실의 삶은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한데, 작가가 독자에게 너무 큰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고민해서 수위를 조절했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남성의 심기를 건드리고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죠. 저야 20대 내내 검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서른 살에 검사가 되어서 젊음과 삶을 검찰에 바쳤다고 할 수 있어요. 일하면서 아이 키우고 하다 보니 바빠서 특별히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이 ‘랜덤’으로 받은 걸 텐데,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요. 같은 이유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저는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김승섭:“이왕 시작한 이 운명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 “미투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 같은 이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서 마땅한 존엄을 느꼈어요. 2018년은 서지현이라는 개인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요?

ⓒ김희지
5월17일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서지현:인간 서지현은 변한 게 없어요. 검사 생활할 때도 사람들이 신기해했어요. 너는 참 미스터리라고. 검사 생활을 15년이나 하고도 어떻게 아직도 사람을 그렇게 믿고, 마음을 쉽게 열고, 또 그렇게 행복하냐고. 제가 초임 때 어떤 글을 읽었어요. 세탁소에 새 옷걸이가 들어왔는데 헌 옷걸이가 말을 걸어요. ‘앞으로 너는 다양한 옷을 입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옷이 너 자신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새 옷걸이가 물어요. 헌 옷걸이가 이렇게 답해요. ‘나는 그 옷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옷걸이를 너무나 많이 봤어.’ 이 얘기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가 있어요. 검사라는 직업이나 내가 나온 대학, 이런 것들을 벗으면 나에게 남아 있는 건 뭘까. 15년의 검사 생활은 직업이나 학벌 같은 옷을 벗었을 때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고,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본질은 누구도 무엇도 바꿀 수 없어요. 주로 집안에 있지만, 집에서도 잘 지내고 있고요. 가끔 기쁘고, 가끔 슬프고, 가끔 절망스럽고, 가끔 희망을 품고…. 이제는 삶이 원래 그런 거라는 걸 알아요. 아버지가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의 기도’라는 시를 써주셨어요. 돌아가신 후에 읽어보니 이게 유언이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인생이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해가는 여정이다. 강건한 의지, 진지한 신념, 온화한 마음,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 힘차게 비상하여라’는 대목이 있어요. 힘들 때면 아빠가 남긴 시를 꺼내 읽어요. 고통스럽지만 고통에 무릎 꿇지 않고 내 운명을 사랑하려고요.

김승섭:2018년 가장 큰 두 사건을 꼽으라면 저는 남북 정상회담과 미투라고 생각해요. 둘 다 너무 중요한 문제예요. 많은 난관이 있지만 남북관계는 전진하고 있다고 봐요. 그에 비해 많은 사람에게 해당되고 큰 아픔 속에서 시작한 미투는 더 힘들어진 느낌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서지현 검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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