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직후부터 ‘미국 우선주의’ 슬로건을 내세워 기존 국제협정 무시, 동맹 무시, 보호무역 등을 밀어붙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 집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엔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소탕 및 테러 재발 방지를 위해 시리아에 주둔 중인 미군 2000여 명에 대한 철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결국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철수 결정에 항의하며 사임했다. 미국 내 많은 전문가들과 주요 언론은 매티스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감시견’ 노릇을 해온 인사가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트럼프식 세계관인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실제로 매티스 전 장관은 사직서에서 “우리는 미국의 안보와 번영 및 가치에 가장 유익한 국제 질서를 진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동맹과의 결속을 통해 강화될 수밖에 없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AFP PHOTO사임한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안정판’ 구실을 해온 인물 중 한 명이다.
4성 장군 출신인 매티스 전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등과 함께 행정부 내에서 ‘안정판’ 구실을 해온 핵심 인사로 꼽힌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이들에게 트럼프 행정부 내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견고한 독선 앞에서 예외 없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과 이란 핵협정 탈퇴를 비판하다가 전격 경질됐다.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성격 및 스타일 차이로 갈등을 빚는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어느 순간 사임했다.

‘어른들의 축’ 해체, 강경 충성파만 남아

매티스 전 장관은 그래도 오래 버틴 편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우방들에게도 미국 외교 안보정책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겨진 상징적 존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탈퇴시키겠다며 유럽 국가들을 위협할 때 적극적으로 말린 사람이 바로 매티스 전 장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간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던 2017년 중반에서 2018년 초 사이, 한국 내 미군 가족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대북 선제공격론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도 했다. 매티스 전 장관은 대북 조치의 위험성과 후유증을 경고하면서 이런 조치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았다. 이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외교 및 군사 문제의 문외한인 트럼프 대통령을 보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선은 무역과 내치에서도 거침이 없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 가운데 하나인 자유무역주의에 제동을 걸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곧이어 유럽 우방들에게 관세 문제로 시비를 걸더니 지금은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과 사상 최대의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와중인 2018년 3월 당시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에 반발해 사표를 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반이민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도 예산안에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예산 50억 달러가 포함되지 않을 경우 예산안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2018년 12월21일 자정부터 연방정부가 ‘셧다운(잠정 중단)’되었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무역장벽 예산의 책정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어서, 셧다운 상황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문제는 매티스 전 장관 같은 ‘어른들의 축’이 해체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을 저지할 수 있는 이들이 행정부에서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 주위엔 온통 충성파뿐이다. 안보 분야에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유엔과 나토, 유럽연합 같은 국제기관에 깊은 불신감을 노출하며 북한 등에 극단적 강경 대응을 설파해온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있다. 경제 부문에서는, 트럼프 열혈 지지자로 멕시코 장벽 건설과 대중국 무역전쟁을 밀어붙이는 래리 커들로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버티고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나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도 대중국 강경파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에 맞는 사람이다.

중국과의 무역분쟁 해소에 적극적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나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유의 국수주의적 세계관과 국제주의적 태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여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을 반대하다가 막판에 태도를 바꿔 텔레비전·라디오 등에 나가 지지 발언을 늘어놓았다. 므누신 장관은,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 폄하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금융시장에 대한 대통령 워킹그룹’을 소집했다가 오히려 주가 폭락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익명의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파월 연준 의장을 해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트럼프가 므누신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매티스 장관 사임 뒤 누가 그를 대체할지도 불투명하다. 의회 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2018년 12월27일 현재 국방장관 후보로는 패트릭 섀너헌 국방부 부장관,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 켈리 아요테 전 공화당 상원의원, 짐 탤런트 전 공화당 상원의원, 데이비드 매코믹 전 재무차관 등 5명이 거론된다. 아요테 전 의원은 이란 핵협정을 질타해온 대북 강경파로 알려졌다. 중앙정보국 국장 후보로 거론된 바 있는 코튼 의원은 시리아 철군에 반대하는데 트럼프와 코드가 맞을지 의문이다.

“트럼프의 핵무기 사용권 제한하라”

육사 출신인 매코믹 전 차관은 거대 헤지펀드 CEO로 활동 중인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에도 국방부 부장관직을 타진받았지만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보잉 사 중역 출신인 섀너헌 국방부 부장관은 주로 행정 개혁에 전문성을 발휘해왔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인사는 짐 탤런트 전 의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직 인수위가 국방장관 1순위로 밀었던 인물로 상원 군사위원장을 지내 의회와도 관계가 좋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설 만한 배짱과 소신 면에서 매티스 전 장관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는 게 중평이다.


〈뉴욕타임스〉는 ‘매티스 퇴임 이후 트럼프’라는 제목의 사설(2018년 12월22일)에서 트럼프 견제를 위한 입법을 역설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권에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는 입법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권을 보유한 것이 굉장히 불안한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국제조약을 뒤엎으려면 의회 승인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입법이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스〉 사설은 “장관 인준권이 있는 상원이 당장 할 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같은 세계관을 가진 인사보다 매티스적 세계관을 가진 인사를 지명하도록 버티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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