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7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독일 집권 여당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의 전당대회에서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가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앞서 18년간 당 대표직을 유지했던 앙겔라 메르켈은 2018년 10월 헤센 주 지방선거에서 기민당이 많은 표를 잃은 직후 당 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또 총리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크람프카렌바워는 결선투표에서 총 517표(52%)를 얻어 482표(48%)를 받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원내대표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크람프카렌바워는 2011년부터 2018년 2월까지 자를란트 주 총리를 역임했고, 2018년 2월 메르켈에 의해 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되었다. 메르켈은 2021년 총리 임기를 마칠 때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메르켈의 후계자로 지목을 받고 이번 선거에 나선 그는, 메르켈과 같은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했다. 그는 당 대표 선거 유세 연설에서 “기민당은 겁에 질려 우나 좌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았던 메르츠 후보는 “분명한 노선 없이 더 좋은 선거 결과를 얻을 수 없다”라며 당이 메르켈의 유산을 버리고 새로워질 것을 요구했다.
ⓒEPA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아래)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지목되어왔다.

크람프카렌바워는 당 대표 당선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지만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하다. 우선 프리드리히 메르츠로 대표되는 당내 보수 세력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두 사람의 득표수 차이가 매우 근소했던 데다 메르츠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분명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크람프카렌바워가 메르츠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메르켈 이후는 메르켈 이전과 같지 않다’라는 칼럼에서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기민당 내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이 분명히 드러났다”라고 분석했다. 메르켈 총리가 기민당의 현대화를 이끌었으나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두 집단이 기민당에 존재하며, 당이 메르켈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론 대부분은 메르켈이 보수적인 서독 남성 중심의 기민당을 중도 실용주의 노선 정당으로 만들면서 장기 집권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메르켈은 진보 성향 정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정치적 의제를 기민당의 것으로 만들었다. 메르켈 임기 동안 징병제가 폐지되고 동성 부부가 법적으로 완전히 인정받게 되었다. 당 지도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당 지도부에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당은 더욱 젊어졌다. 

“메르켈, 2021년까지 총리직 유지” 68%

메르켈 총리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크람프카렌바워가 총리직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예상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독일 공영방송 ZDF가 지난 12월14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8%만이 크람프카렌바워가 총리직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응답자의 68%는 메르켈 총리가 2021년까지 총리직을 완수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크람프카렌바워는 중앙 무대에서 정치 경력이 없다는 게 약점이다. 그래서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연정을 하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은 크람프카렌바워의 이런 약점을 공략하며 다음 총선에서 집권을 노린다. 사민당은 선거 이전에 크람프카렌바워가 총리직을 넘겨받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사민당이 연정을 포기하고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자유민주당(자민당)·녹색당과 새롭게 연정을 구성해서 크람프카렌바워를 총리로 임명하는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녹색당은 현재 기민당·기사당과 사민당의 연정이 해산될 경우 재선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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