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에 대한 입소문이 심상찮다. 2018년 최고의 영화라는 극찬 때문이다. 정작 이 영화는 개봉관이 많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되면서 한국 극장들이 개봉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1970년대 쿠아론 감독의 어린 시절을 그린 이 자전적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흑백의 6K 고화질 영상 때문이다.
 
감독 혼자서 제작·각본·촬영·편집을 한 이 영화는 매우 사진적이다. 이전 작품인 〈칠드런 오브 맨〉이나 〈그래비티〉를 뛰어넘는 영상이 분명할뿐더러, 흑백으로 제작되면서 풍기는 스틸컷 같은 착각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쿠아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대적인 흑백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궁금하다. ‘현대적인 흑백’도 있나? 꽤 심오해서 곰곰 생각해봤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혼자서 제작·각본·촬영·편집을 한 〈로마〉는 매우 ‘사진적인 영화’이다.
알폰소 쿠아론은 멕시코인이다. 멕시코 문학은 마술·신화·초현실이 뒤섞인 문화를 원형질로 한다는 소설가 마르케스의 말처럼 〈로마〉도 그렇게 보인다. 특히 이번 영화의 이미지는 20세기 멕시코 최고의 사진가 마누엘 알바레스 브라보의 흑백사진처럼 초현실적이다. 대가족이 모여서 야유회를 즐기는데 어른들은 총질을 하고, 뜬금없는 무술 집단은 무슨 현상일까 생각하는 와중에 격렬한 혁명처럼 사람들은 뛰어다닌다. 분명히 감독이 경험했던 1970~1971년 멕시코의 현실임에도 내게는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은염이라는 모노톤이 만들어내는 흑백사진처럼 영화 역시 사실을 화면 밖으로 구축한다. 근대인들에게 현실은 컬러였지만 그것을 복제한 사진은 흑백인 이율배반의 매체였다. 곧 컬러사진이 이 둘을 합치시켰지만 흑백의 소명은 끝나지 않았다. 흑백은 현실이 아닌 ‘무엇’을 표현하는 장치로 부활했으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인간의 사유를 사진화하는 데 흑백사진이야말로 가장 적당하다’는 예술론을 펼쳤다. 인간 사유가 사진의 표면에 고정될 리 없건만 이런 관념적 표현이 그럴듯하게 먹혀드는 것은 흑백사진이 갖는 그 미묘한 초현실의 현실체란 점 때문이다.
 
흑백 영상이 현대적일 수 있을까?  
〈로마〉는 매우 사진적인 영화다. 영화는 시간적인 서사를 따르되 순간순간 사진처럼 멈춘다. 알폰소 쿠아론은 이 흑백 영상을 찍기 위해 디지털 65㎜ 카메라를 사용했다. 현존하는 가장 큰 이미지 센서를 탑재한 고화질 카메라다. 하지만 화질이 높다고 현대적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필름 카메라에 비해 더 깊은 심도와 계조를 보여주어서 현대적이라고 말한 것도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흑백 자체가 현대적일 수 있을까? ‘오래된 미래’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넷플릭스가 만든 극장용 영화’라는 형용모순처럼 들린다. 결국 “현대적인 흑백을 보여주고자 했다”라는 감독의 말은 선문답이 아닐까? 부처를 죽여야 부처가 산다고, 쿠아론 감독은 극장을 죽이는 넷플릭스를 통해 극장의 부활을 시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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