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를 표지 인물로 내세운 〈시사IN〉 송년호(제589호)를 마주한 순간, 독자가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가슴이 벅찼다. 정면을 응시한 서 검사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눈빛에서 한 해 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장내자는 외침이 그 어느 해보다도 컸던 2018년은 서 검사를 비롯한 용기 있는 여성들의 눈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서 검사의 사진을 보고 떠오른 또 한 사람이 있다. 도로시 카운츠는 195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해리 하딩 고등학교에 흑인 최초로 입학한 학생이다. 등교 첫날부터 학생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었다. 주눅 들지 않는 도로시 카운츠와 그 뒤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롱하는 백인들의 모습은 몇 장의 사진으로 역사에 남았다. 당시 백인 사회에서는 가벼운 장난처럼 여겨졌을지 몰라도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사진은 차별주의자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보여주는 자료로 쓰이고 있다.
 

 

ⓒ정켈 그림
서지현 검사와 도로시 카운츠를 보며, 용기 있는 사람의 행보를 기록하는 일 못지않게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의 행보를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한 해 동안 나온 무수한 성차별적·시대착오적 발언 중 몇 개나마 지면을 빌려 기록하고자 한다.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을 많이 하는데, 다른 여성들보다 베트남 여성들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성은 국적에 따라 비교받고 선택받는 물건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언급할 의도였더라도 ‘선호’라는 단어에 담긴 평가의 뉘앙스는 결코 칭찬이 될 수 없다.  
“젊은 층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범국민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야(이철우 경북도지사).” 어디 이뿐일까. 전라북도 저출산대책위원회는 “대학생 때 결혼하면 취업을 1순위로 추천하자”라며 장단을 맞췄다. 황당하고 설익은 저출산 해법이 난무한 한 해였다. 결과적으로는 정책 결정권자들이 여성과 청년의 삶에 대해 얼마나 얄팍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만 확인했을 뿐이다.
“부모가 선도 의지를 가진 점 등을 고려해 형을 내렸다(제주지방법원 한정석 부장판사가 7년간 총 339회 불법 촬영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남성 공무원 김 아무개씨(30)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며 한 말).” 피해자에게는 고학력 성인 여성이면서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던 그 사법부는 어디에 갔나?  
언론 현주소 보여준 강진 살인 사건   
“강진 실종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 아빠 친구와 3시간 동안? 알몸으로 산속에서…(인터넷 언론사 〈뉴스타운〉 공식 SNS 계정).” 사건의 일부를 선정적으로 부각해 클릭을 유도하는 ‘실시간 검색어 장사’ 경쟁 속에 피해자의 존엄은 뒷전이었다. 특히 강진 살인 사건은 ‘여고생’ ‘시신’ ‘알몸’을 강조하는 보도 일색이었다. 성폭행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가 쏟아지면서 한국 언론의 밑바닥이자 현주소를 굳이 다시 한번 보여줬다.  
삼권분립 국가라지만 젠더 감수성 측면에서는 입법부(국회의원)·행정부·사법부, 심지어 ‘제4부’라 불리는 언론도 하나같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한 해였다. 이맘때면 가장 많이 쓰이는 사자성어가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낡은 것을 떠나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낡은 젠더 감수성이야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려야 하지 않을까.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미투’ 관련 법안을 비롯해서 성범죄 및 가정폭력, 웹하드 카르텔, 낙태죄 폐지, 채용 성차별, 5·18 계엄군 성폭행 진상 규명 등 해결할 숙제가 많다. 모두 젠더 감수성을 기본에 두고 풀어야 할 문제이다. 

 

기자명 양정민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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