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을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망설였다. 책을 많이, 제대로 읽는 편이 아닌 내가 올해엔 더 그러했기 때문이다. 직종과 무관한 일을 하다 본업인 아나운서로 복귀하고 보니 할 일이 태산이어서 ‘독서’라고 말할 행위를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참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나저제나 읽어볼 요량으로 책상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셔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사소한 부탁〉)이 그것이다. 지난여름에 타계한 문화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 바로 ‘진짜 읽기’를 시작했다. 눈으로 활자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리 내어 읽었다. ‘서문을 대신’한 “머슴새와 ‘밭가는 해골’”부터 두어 꼭지를 바로 낭독해보았다. 좋은 문장이 그러하듯 글월이 내가 쓴 것인 양 입에 붙었다. “평소에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학창 시절 들었던 ‘문학개론’의 고갱이를 두 문장으로 웅변한 내용은 지은이의 내공을 간단하게 드러낸다. 사흘을 내리 낭독하고 묵독하며 ‘발췌독’을 했다. 완독(完讀) 한 번으로 그치기엔 아쉬움이 남아서이다.

아쉬움은 왜 남겨두었을까. 말과 글을 다루며 시청자와 독자에게 전하는 일을 하면서 갈피 잡기 어려울 때, 경전(經典)처럼 들춰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외래어의 현명한 표기’ ‘방언과 표준어의 변증법’ ‘말의 힘’ ‘종이 사전과 디지털 사전’ ‘학술 용어의 운명’ ‘언어, 그 숨은 진실을 위한 여행’, 그리고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까지. 모름지기 말글살이는 어떠해야 한다, 명료하게 가리키는 선생의 가르침을 곱씹고 싶어서이다. 선생이 남긴 ‘사소한 부탁’을 어찌어찌 이뤄보리라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 까닭에서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난다 펴냄


〈사소한 부탁〉의 출간은 올해 6월. 책방에 깔린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유고집이 되었다. 선생은 ‘사소하다’ 했지만, 자잘하지 않고 시시하지 않으며 지엽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하찮지 않고 미미하지 않은 중요한 부탁을 남겼다. 그의 사소한 부탁은 무엇인가. 책 속에 그것이 있고, 답이 있다. 오래전 의기투합했던 교수를 엊그제 만났다. 문화방송에 ‘우리말위원회’를 꾸릴 때 엮인 인연의 그와 권커니 잣거니 우리말에 대해 말했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다룬 그의 신간 〈언어의 줄다리기〉를 놓고 얘기했다. 자연스럽게 황현산 선생의 전작인 〈밤이 선생이다〉로 화제가 옮아갔다. 그는 그것을 읽었고, 나는 〈사소한 부탁〉을 읽었다. 그는 아마도 묵독했을 것이고, 나는 낭독을 했다. 무엇이든 읽는 것이나, 이 책은 낭독하기를 권한다. 모름지기 글은 소리 내어 읽어야 맛이다. 

기자명 강재형 (MBC 아나운서국 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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