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법률가들의 삶을 기록한 이 책에 대해서 짧은 서평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김두식의 〈법률가들〉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이 ‘사람의 인생을 한 단면만 잘라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섣부른 일인가’였기 때문이다. 친일과 반일, 좌와 우의 갈림길에서 당대 엘리트들은 같은 사람의 행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지러운 변신을 거듭한다.

책은 1949년 서울지방검찰청 차장검사인 김영재가 좌익 활동을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큰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고, 다른 친척은 천황의 궁성에 폭탄을 던지고 옥사했던 독립운동가 집안에 태어난 김영재는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일본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다. 일제강점기에 판검사가 되는 것은 실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당연히 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야 한다.

흔한 친일파 중 한 명으로 보이는 그는 해방 이후 엉뚱하게 좌익 혐의로 구속되면서 몰락한다. 죄명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된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그를 구속한 사람이 저 유명한 ‘사상검사’ 오제도였다는 점에 있다. 일제 때 법원 서기로 일하다가 해방 후 검사가 된 오제도는 독립운동가 출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을 좌익으로 몰아 파멸시킨다. 이런 식의 교차와 반전이 거듭되면 누가 누구를 단죄하는 것인지, 그 시대에 과연 ‘옳은 길’은 있었는지 깊은 회의를 갖게 한다. 심지어 가인 김병로, 사도법관 김홍섭 등 우리 법조에서 신성시되는 분들의 인생에서도 한 자락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과연 그 시대에 훌륭한 판검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 책에 나오는 법률가들의 대부분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지만, 친일 여부를 기준으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시대였고 그만큼 변화도 많았다. 책을 읽다 보면, 성실히 살지만 “만세를 부르고 다니지는 않는” 조선인과, 형편없이 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만세를 부르는” 조선인 중 누가 애국자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윤치호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어차피 한결같은 삶이란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않은가 하는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법률가들〉
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그러나 단단한 기반을 가진 윤리는 현실을 직시할 때만 생길 수 있다. 궤변과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유연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신념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결코 단순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가장 어두운 시기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 열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정의’란 매우 단순하고 일도양단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흔히 들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기자명 금태섭 (국회의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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