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불평등이 그것의 발현을 방해한다고 주장할 때, 갑자기 어지러워 보이는 숫자와 도표와 해부학적인 사진 등을 꺼내들고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론을 마주할 때다. 여기 우리가 안심하고 계속해서 성평등을 주장해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은, 수컷은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문란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질을 갖고 있으며, 그것의 근원에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있다는 T-가설의 뒤늦은 장례를 치르는 책을 발표했다. 

먼저 이 모든 것의 시초가 된 것은 1948년 베이트먼이라는 영국의 유전학자가 초파리를 연구해서 내놓은 이른바 성선택 이론이다. 이 연구의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수컷 초파리는 더 많은 짝짓기를 할수록 더 많은 새끼를 얻지만, 암컷은 그와 관계없이 같은 수의 새끼를 얻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베이트먼의 실험은 유전자 감식 자체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시기의 연구이고, 실제로 2012년 미국 UCLA에서 반복한 실험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파인은 그의 논문 자체가 총 6차례 실험 중에서 성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였던 5, 6번째 실험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또한 다른 동물 연구들을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암컷 역시 경쟁을 통해 번식 성공과 성공적인 육아를 도모하고, 수컷 역시 무차별적인 짝짓기가 아니라 신중하게 상대를 고르고, 돌봄에 차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호르몬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분야를 막론하고 울려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파인이 최신 연구 수백 편을 인용해 밝히는 바는, 성호르몬의 차이를 통해 확실하게 발생하는 것은 생식기와 생식 행위에서 보이는 차이일 뿐 나머지 부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 렉스〉
코델리아 파인 지음
한지원 옮김
딜라일라북스 펴냄


요컨대 테스토스테론은 개체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단독으로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행동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많거나 없는 것이 영장류 이상 개체들의 성행위 빈도수를 늘리거나 줄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원인이기는커녕 특정한 상황들에 대응하기 위해 분비가 유도되거나 줄어드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현대 생명과학 발전의 성과를 집대성하느라 지루해질 뻔한 이 책은 파인의 뼈 있는 유머에 의해서 안심하고 볼 수 있는 교양서가 되었다. 성차별주의자들이여, 이제 ‘호르몬 떼고’ 한번 붙어보자. 우리에겐 73페이지의 후주와 참고 문헌이 있다. 심지어 색인은 넣지도 않았다. 


기자명 최태섭 (문화평론가·〈한국, 남자〉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