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가 헤쳐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잭 런던이 떠오른다. 두 사람 모두 디킨스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었다. 독학으로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지식인의 위치에 섰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된 이후에도 글 쓰는 걸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1909년에 태어난 마쓰모토 세이초는 잭 런던이 숨을 거둔 나이 무렵인 마흔한 살에 데뷔해 1992년 죽을 때까지 40여 년간 장편 100여 편과 중단편 350여 편을 발표했다(이 기록이 깨지느냐 마느냐는 스티븐 킹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물론 두 사람의 작풍은 다르지만 예술의 뼈대는 닮았다. 즉, 대중적인 이야기 틀 안에서 자신이 속한 시대의 모순과 한계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둘은 ‘그 어려운 일을’ 설교하거나 독자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으며 해낸다. 그 덕분에 책을 덮는 순간부터 독자 스스로의 물음과 고민이 시작된다. 〈현란한 유리〉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1964년에 발표한 연작 추리소설집이다. 딸의 결혼 선물로 산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소설은 이 반지가 도장 격파라도 하듯 자신을 소유했거나 탐했던 사람들의 인생을 하나하나 박살내는 모습을 쫓아간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긴 세월을 인물과 장소를 바꿔가며 펼쳐지는 사건들 속에서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인물 대부분이 이 시기에 벌어진 전쟁(만주사변,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1960년대 학생운동)에서 직간접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중의 어떤 경우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아서 섬뜩하다. ‘티켓’에는 종전 직후 철이 부족해지자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맞은 철사를 빼내 팔려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우리에게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의 업자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을 헐값으로 대량 수입해오고 있다는 보도 때문이다. 재난의 형태가 비슷하면 인간이 비열해지는 모습도 비슷해지는 모양이다.

〈현란한 유리〉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펴냄


전쟁 또는 비슷하게 파괴적인 재앙이 남기는 고통은 그를 통해 부를 쌓으려는 이들 탓에 끊임없이 연장된다. 그런 면에서 유일하게 전쟁의 여파를 찾아볼 수 없는 마지막 작품의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무대는 부유층의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한 작은 어촌이다. 생선 비린내밖에 없던 시골 마을에 고급 별장들이 들어선다. 사건은 학비가 없어 호텔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고등학생이 별장으로 휴가를 온 젊은 도시 여성을 짝사랑하게 되면서 발생한다. 총성이 멈춘 후 우리가 마주하게 될 전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기자명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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