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는 21세기 지구촌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최근 한국을 달궈온 이슈인 국민연금,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세금, 최저임금 등도 하나같이 분배와 관련된 문제다. 저자는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이지만, 끊임없이 대중과 교감하며 대중서를 출간해왔다. 이 책 역시 그런 역량이 십분 발휘된 저작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단번에 끝까지 읽어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전문적인 이론을 나열하거나 막연하게 당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궁금해할 수 있는 논점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듯한 경어체 문장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분배는 전문적인 의제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삶과 직결되는 사안이며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다. 시민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추진될 수 없는 의제다. 그런 점에서 대중을 향해 말 걸기를 시도하는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를 표방한다. 자유주의는 개입이나 간섭을 무턱대고 거부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개입이나 간섭은 자유주의와 배치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노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득 배당에서 제외하는 것, 부자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출발선이 다른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에 반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들이 각자 자유롭게 노동하고 소득을 받아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파격적인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는 ‘기본소득’과 특정 시점에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목돈을 조건 없이 제공하는 ‘기초자본’이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참 어렵다. 단시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한두 가지 정책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수많은 정책이 실험되어왔지만,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쯤 되면 좀 더 근본적인 대안에 마음이 기울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급진적 혁명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 증대나 자산 증식에 대한 욕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라는 쉽게 대체되기 어려운 현실을 뒤엎지 않으면서, 자유주의라는 근대적 이념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 그 대안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21세기 분배의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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