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무용해서 유용한 굿즈, 너는 누구냐

2019년 01월 11일(금) 제591호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공유하기

구글+구글+ 카카오톡카카오톡 카스카스 라인라인 밴드밴드 네이버블로그블로그 URL복사URL복사

URL 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게 굿즈 소비다. 굿즈와 기념품의 차이를 보면 기성세대와 요즘 세대의 소비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굿즈의 열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걸 왜 사, 그걸 누가 산다고, 그런 건 또 언제 샀냐,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샀어, 그런 걸 사서 무엇에 쓰는데, 그건 또 어떻게 쓰는 건데?” 기성세대가 ‘굿즈(Goods)’를 대할 때 품는 육하원칙 의문이다. 기성세대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게 바로 굿즈 소비다. 요즘 세대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가장 밀접한 소비지만 ‘아재 감수성’을 가진 기성세대에게는 무의미한 낭비처럼 보인다.
아이돌 같은 연예인 관련 소품,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와 관련된 상품을 뜻하는 굿즈는 한마디로 말하면 기념품이다. 하지만 기념품과 굿즈는 다르다. 알면 알수록 둘은 확연히 다른데, 기념품과 굿즈의 차이를 들여다보면 기성세대와 요즘 세대의 소비 성향 차이를 알 수 있다. 흔히 기념품은 관광객이 사는 것이고, 굿즈는 팬이 사는 것이라 말한다. 굿즈 현상은 팬덤에서 시작된 것이 맞지만 이제 팬덤의 영역 밖으로 확장되었다. 굿즈를 모으는 사람도 ‘오덕(오타쿠의 한국식 표현)’이 아니라 일반인이 되었고 아이돌 기획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여러 형태로 굿즈를 만든다. 기념품과 비교되는 굿즈의 열 가지 특징을 파악해보았다.

ⓒ박신영 제공
2018년 10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 아트북페어’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굿즈를 살펴보고 있다.
1. 쉽게 구할 수 있으면 굿즈가 아니다
기성세대에게 기념품은 행사장에 가면 그냥 나눠 주는 것이거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거저 얻는 것이어서 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 기념품이다. 하지만 굿즈 세대에게 굿즈는 내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것이거나 돈이 있어도 쉽게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라도 구하고 싶은 게 바로 굿즈다.
굿즈의 가치를 담보하는 것 중 하나는 언제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한정판은 아니다. 지금 이때, 바로 이곳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일종의 시즌제 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영화제라도 매년 다르게 굿즈를 만들면 수집 대상이 된다. 굿즈는 기본적으로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2. 굿즈는 모아야 맛이다
기념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컬렉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굿즈는 곧잘 컬렉션으로 진화한다. 참여한 행사에서 기념품으로 우산을 나눠줬다고 해서 그 전해에 나눠준 우산까지 구하려 하거나 매해 나눠준 우산을 다 모아서 구색을 맞추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굿즈를 모으는 사람은 그렇게 한다. 굿즈 수집은 자기 완결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굿즈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공유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면적을 넓히려는 욕망이 수집 행위로 나타난다. 보통 굿즈에 대한 정보는 커뮤니티에서 얻는데,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을 통해 새로운 굿즈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구매가 확산된다.
굿즈를 무작정 모으는 것은 아니다. 굿즈에서 핵심은 의미 부여다. 단순히 수집을 위한 수집은 의미가 없다. 이것저것 양적으로 많이 모으는 것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무엇을 얼마나 모았느냐보다 그것을 왜 모았는지 맥락이 중요하다.

ⓒ소시민 워크 제공
소시민워크는 영화 <레토>의 굿즈를 제작해 전시했다.
3. 굿즈는 파는 것도 맛이다

굿즈가 맹목적인 수집과 다른 점은 거래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어딘가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것’은 재거래를 할 때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받은 것을 돈 받고 팔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굿즈는 그렇지 않다.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 매매가 활발하다.
모으는 이유가 팬심이었다면 파는 이유도 팬심이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굿즈 처분은 굿즈 세대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다.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를 갖는 물건이니 팔겠다’라면서 중고 장터에 내놓는다. 새로 관심을 갖게 된 팬에게 그동안 모아 구색을 맞춰둔 굿즈를 한꺼번에 ‘턴키 방식’으로 파는 경우도 자주 있다.

4. 무용하니까 유용하다
사뒀다가 나중에 되팔 수도 있지만 굿즈는 대부분 무용한 것들이다. 기념품은 준비하는 쪽에서도 실용성에 방점을 찍는다. 되도록 용도가 있는 것을 만든다. 그래서 기념품은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굿즈는 용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셔두기 일쑤다. 굿즈를 제작할 때는 유용성이 그리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니다.
굿즈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배지인데 실용성이 거의 없다. 배지를 사는 사람도 가방에 주렁주렁 달거나 옷을 장식하기 위함이 아니다. 2019년이 되었지만 ‘<무한도전> 2015 일력’은 여전히 온라인 굿즈 장터에서 거래된다. 2015년 일력은 지금 아무런 필요가 없지만 <무한도전> 10년을 기념해 달력이 아니라 일력으로 만들어 팬들에게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굿즈에서 유용성은 양보할 수 있지만,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디자인이다. 굿즈의 3요소를 꼽으라면 ‘팬덤’ ‘디자인’ ‘상품성’이다. 굿즈 제작의 주체가 관심과 애정을 받는 존재여야 한다. 디자인에서는 세련미를 요구한다. 일정한 가격을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상품성을 갖춰야 한다. 세 가지 가운데 특히 디자인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굿즈를 제작하는 이들은 다양하다. 팝아티스트 강영민 작가의 배지, 힙합 래퍼 마미손의 인형, 서인지 작가의 뚠뚠이 캐릭터(아래 왼쪽부터).
5. 굿즈는 모셔두기 위한 용도다

굿즈는 소장만으로도 행위가 완성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굿즈를 사용하게 되더라도 하나를 더 사서 하나는 원형 그대로 보관하고 다른 하나를 쓰곤 한다. 사용을 통한 만족보다 원형 그대로 보관하면서 더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처음 구입했을 때의 박스와 포장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곤 한다.
타고난 수집가로 알려진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수집 미학>에서 “수집은 조용히 완상(玩賞)하는 것이다. 써서 소모되어야 할 것들을 바라보기 위해 구입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굿즈 수집가들이 그렇다. 굿즈는 단순한 사물이지만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미술품처럼 얼마든지 격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6. ‘과시템’은 굿즈가 아니다
기념품의 세계가 ‘수직적’이라면 굿즈의 세계는 ‘수평적’이다. 기념품은 학력이나 계급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만 굿즈는 단지 취향을 드러낼 뿐이다. 그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계급이나 계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른 수집품에 비해 굿즈는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 가격은 대부분 몇천원 정도이다. 어떤 굿즈를 갖느냐에 따라서 피라미드형 계층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굿즈에 우열은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굿즈를 공유하는 것은 취향의 맥락을 함께하는 일이다. 굿즈는 극히 소수만 알아본다. 소유한 사람은 아주 살짝 티를 내고 이를 아는 사람만 알아봐주는 것이 굿즈의 구조다. 모든 사람에게 대단해 보이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이 굿즈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 알아봐주면 된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를 반영한 ‘이니 굿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청와대 기념품 시계는 인기가 무척 높았다.


7. 굿즈는 ‘사는 순간’을 사는 행위다
매년 연말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 아트북페어’는 이런 굿즈의 진화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행사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아트북페어로 독립출판물과 이미지 위주의 서적을 전시 판매한다. 그런데 작가들이 아트북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 굿즈를 선보였다.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다채로운 굿즈를 만날 수 있는 행사가 되었다. 매회 굿즈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여기에서 굿즈를 판매하는 작가들은 아이돌이 아니지만 나름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매년 성황을 이룬다.
처음 와보는 사람에게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별 쓸모없는 것을 파는 행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행사장을 돌면서 작가들의 굿즈를 자세히 보면 애정이 생긴다. 그리고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소확행’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주최한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는 “굿즈는 대부분 적은 수량으로 작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가의 에디션을 소장하여 미감을 표현하는 것과 다른 맥락이다. 이것을 구매한 나, 그리고 이 굿즈가 어떤 취향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다”라고 말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굿즈가 매매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재미있다. 단순히 가격과 용도를 묻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굿즈의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서로 얘기를 나눈다. 이로 대표는 “이 굿즈가 마음에 들어서 내가 지금 이것을 산다는 감각을 중요시한다. 사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인 셈이다. ‘사는 순간을 산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올해로 세 번째 참여한 서인지 작가는 ‘뚠뚠이’ 캐릭터 굿즈를 판매한다. 뚠뚠이는 졸업 작품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다. 서 작가에게 뚠뚠이는 자신의 아바타다.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을 담아 굿즈로 만든다. 그림도 그리고 싶은 대로, 색도 쓰고 싶은 대로, 만드는 것도 마음 가는 대로 만든다.

8. 마케팅보다 빨리 움직이는 굿즈의 세계
이제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굿즈 제작을 활용한다. 스타벅스 등 기업은 MD(Merchandise)라는 이름으로 시즌 한정판 굿즈를 판다. 굿즈 제작은 점점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양한 굿즈를 제작하는 소시민워크의 양경애 대표는 “처음에는 예술영화 굿즈 작업을 주로 했는데 지금은 독서클럽, 미디어 파인아트 작가 등 다양한 곳에서 의뢰를 해온다. 굿즈 제작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굿즈는 저작권을 가진 곳에서 제작하는 ‘공식 굿즈’와 팬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하는 ‘비공식 굿즈’로 나뉜다. 그런데 비공식 굿즈가 공식 굿즈를 능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영화를 개봉할 때 홍보사가 만들어 내놓는 것보다 팬들이 만들어내는 굿즈가 더 인기가 좋아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마케팅보다 더 민첩하고 더 섬세하고 더 절묘해서 파괴력을 갖는 게 바로 팬심이기 때문이다.
굿즈의 특징은 자신만의 구석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들면서 여러 갈래로 갈린다. 이제 굿즈 전문 제작사의 굿즈까지 수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양 대표는 “소시민워크의 배지와 소시민워크 플립북을 수집 대상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납품한 것 외에는 따로 판매하지 않는데 조르는 사람이 많아 애를 먹는다”라고 말했다.

9. 좋아하니까 사고, 사니까 좋아하게 된다
굿즈는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물건이기도 하면서 또한 팬이 아닌 사람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힙합 뮤지션 마미손의 굿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단순히 팬덤에 기대서 판매를 목적으로 굿즈를 만든 것이 아니라 팬덤을 확장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Mnet <쇼미더머니 777>에서 비록 탈락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은 마미손은 전문 업체와 협업해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통해 굿즈를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마미손의 굿즈 전략은 마케팅보다 홍보에 주안점을 두었다. 인기가 있어서 굿즈를 팔겠다는 것이 아니라 굿즈를 팔아서 마미손을 알리겠다는 전략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마미손 굿즈는 마미손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초등학생 팬들의 반응이 적극적이었다. 마미손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은 주로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굿즈가 초등학생들에게 두루 팔려나가면서 팬 층이 더욱 두꺼워졌다.

10. 굿즈 함수는 단순하지 않다
굿즈는 작가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좋은 매개물이다. 현대미술 팝아트 작가들도 10여 년 전부터 굿즈를 제작했다. 가나아트센터 등 대형 갤러리에서 적극 후원했다. 팝아트협동조합 대표인 강영민 작가는 본인이 아티스트 셀프 프로덕션을 만들어 굿즈를 제작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았다. 요즘 많이 팔리는 굿즈와 비교하면 아티스트 굿즈는 가격대가 무척 높은 편이었다. 몇만원 혹은 몇십만원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작가들은 굿즈를 제작할 때 고급화 전략이 아니라 가벼운 소품으로 만들어 유통한다.
유행하는 굿즈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난을 치는 법을 설명하면서 ‘난을 치는 데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법칙이 없어서도 안 된다’고 했는데 굿즈의 특성이 그렇다. 굿즈 함수는 복잡하다. 풀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복잡한 굿즈 함수를 풀어내면 대중문화의 도도한 흐름을 포착할 수 있다.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