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와는 짧게 두 번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둘 다 원고 청탁 때문이었는데 한 번은 수락했고 한 번은 거절했다. 두 번 다 인상적이었다. 수락했을 때는 흔쾌히 “와, 재밌겠네요”라고 말했다. 숱한 청탁의 경험이 있지만 그렇게 반응하는 경우가 잘 없어서 기억에 남았다. 거절을 할 때는 하고 싶지만 바빠서 그럴 형편이 아니라고 고사하는데, 괜히 하는 말 같지 않았다고 할까. 그가 거절한 이유는 이 책 때문이었다.
단편집의 표제작이 제목인 경우, 그것부터 읽은 뒤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이 책에선 차례로 그 두 편의 소설이 강렬했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남산타워가 보이는 회사의 옥상에서 블루베리 슈크림 따위를 먹는 걸로도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운 ‘내’가 ‘후임’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룸살롱 접대가 일상인 회사 생활을 견딘 건 세 언니들 덕분이었다. 두세 달 간격으로 결혼을 한 그들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주문서’ 얘기를 꺼낼 때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이야기의 장르가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데서 오는 설렘과 두려움이 몰입도를 높였다. 내가 읽은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전개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데,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 정말 재능인 것 같다. 지금 시기, 옥상이 필요한 우리에게 그가 마지막 문장으로 말을 건넨다.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웨딩드레스 44’는 밴쿠버의 작은 창고에서 ‘픽업’돼 한국으로 수입된 웨딩드레스의 이야기이다. 드레스를 거쳐간 44명의 이야기가 연작 형식으로 실려 있다. 읽으며 두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런 형식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한 번, 44명의 일화가 현재를 사는 여성들을 위화감 없이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쓰임에 따라서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어렵겠지만) 얼마나 유용한지 곱씹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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