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문을 연 서울 혜화동 ‘동양서림’의 간판은 딱 봐도 낡았다. 투박하고 정직한 이 간판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간판을 떼라는 쪽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냥 두라고 한다. 간판에 대한 호불호로 농담 삼아 세대를 구분한다. 2018년 11월부터 유희경 시인(39)의 직장이 서울 신촌에서 혜화동로터리로 바뀌었다. 그가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양서림과 동거를 시작했다.
동양서림 2층은 원래 반은 창고, 반은 사무실이었다. 이제 시집들로 채워졌다. 최소영 동양서림 대표의 제안이었다. 서점의 리모델링을 계획하면서 연이 닿았다. 망설이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최 대표의 남편이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건넨 말에 결심을 굳혔다. “서울에 아직 백 년 된 서점이 없는 거 알아요?” 그 말이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다. 유희경 시인은 “절 하찮게 만들었어요. 제가 글 쓰는 사람이고 책 만들던 사람이고 책 파는 사람인데, 백 년도 안 된 역사를 가지고 사람들이 책을 안 읽네 어쩌네 아웅다웅했던 건가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혜화동의 분위기는 서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신촌이 ‘힙’한 곳이었다면 여긴 ‘웜’한 곳이랄까요. 전엔 사람을 끌어모아야 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돈독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동양서림의 책을 선정하는 데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제 두어 달, 문제집 외 일반 도서의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다. 서점 간 신뢰가 높아지면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것 같다. 벌써 한강·구병모 작가 등이 이 서점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이번처럼 위트앤시니컬은 협업을 많이 한다. 출판사와 함께 책도 만든다. 유 시인은 위트앤시니컬을 시적 상상력, 시적 발화, 시적 사유를 근간으로 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하는 일 중 하나가 서점인 셈이다. 그게 무엇이든 시가 할 수 있는 것, 위트앤시니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 “젊은 시인 중에 인재 풀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다른 상상력이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작가들이요. 그런 의미에서 시의 쓸모, 시인의 쓸모를 생각하고 있고 그 개념은 되게 넓어질 것 같아요.”
출판사 편집자로 9년, 서점 운영은 3년째다. ‘책밥’을 먹은 지 총 12년째다. 그간 벌인 일을 두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는 평가가 아니라 응원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면 일을 키우고 무리하게 될 것 같다. 당분간은 ‘서점과 서점의 융화’에 몰입하겠지만 관성처럼, 그는 또 다른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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