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한 지인이 어느 날 드디어 해결책을 구했다며 내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영혼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영혼과 노동의 괴리는 자본주의 태동기부터 지속되어 왔다. 소수의 직업군이 소외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으니 그들은 바로 전문가들이다.
전통적으로 전문가들은 고도의 추상적 지식을 통해 그들을 위한 조직과 시장을 창출하고 통제해왔다. 이는 단기적 효율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관료제와 거대 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특히 전문가들은 사심 없는 직업 활동을 통해 좁게는 고객의 이익, 넓게는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긍을 가져왔고 이는 그들의 사회적 위신을 보장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에 대한 인상은 냉정한 태도로 일에 헌신하는 차가운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문가에게는 일에서의 성공이 자아 성취에 다름 아니다. 전문가야말로 영혼 없는 일을 못하는 직업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커리어였다.
“예술가는 노동자인가?” “교수는 지식인인가?”
하지만 전문가의 사회적 위신은 붕괴하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폭로한 가해자들의 많은 수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배했던 세계에서 비참하게 퇴출당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기업과 국가의 프로젝트에 용역 계약을 맺고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담론과 작품의 생산이 아닌 프로젝트 수행력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제 전문가 집단은 자신들이 고수해왔던 직업윤리와 업무 능력을 총체적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도전에 안팎으로 직면하고 있다. 소위 전문가적 자율성에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은 명백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려왔던 자율성의 신화가 얼마나 허구적이었는가를 통렬히 반성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자율성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술가는 노동자인가?” “교수는 지식인인가?” 등의 핵심적 질문들이 던져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요원한 듯하다. 기존 전문가 집단들은 여러 도전 앞에서 그저 얼떨떨하게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예술인 단체들이 미투 운동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대학의 교수협회가 강사법 충격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보면 전문가들의 얼떨떨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영혼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라고 말한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어디서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을까?
하나의 예를 언급하고 싶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전문가들도 소모임 활동에 참여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이 재미없어서 예술 동아리에 가입하고 교수는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독서 모임에 가입한다. 내가 볼 때, 사소한 여가 생활처럼 보이는 이 활동들이 전문가들에게 중요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제껏 전문가 집단의 자율성은 지식과 권위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국가, 시장, 미디어 등은 기존 전문가 제도를 위협하고 재편하고 있다. 이제 전문가들은 비빌 언덕을 잃고 다양한 소모임들 속으로 도피하고 있다.
이른바 일반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전문가들은 그동안 제도가 부여해왔던 후광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지식이 갖는 쓸모를 새롭게 검증받는다. 예술가와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소모임이라는 놀이와 읽기와 대화의 현장에 적용하는 어법과 기술을 터득한다.
전문가 사이의 호혜적 우정이 폐쇄적 권위와 전략적 동맹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동료를 찾아 나선다. 그 동료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건 아니건, 자격증이 있건 없건, 서로에게 아마추어이자 시민이자 노동자인 사람들이다. 전문가의 영혼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발명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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