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 하면, 항상 남부의 면화(목화) 밭에서 면화를 수확하고 있는 흑인 노예를 떠올릴 때가 많다. 하필이면 왜 미국이고, 왜 면화인가? 게다가 흑인 차별은 이후에도 심했거늘, 노예는 왜 해방시켰단 말인가? 아니 근본적으로, 제국주의는 어째서 탄생했는가?
하나같이 대충 설명할 수 없는 주제인데, 여기에 공통적인 한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바로 면화다. 산업혁명을 거론할 때 증기기관과 더불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면화 관련 산업이었으며, 이는 최초로 범세계적인 공급망과 소비망을 연결해놓았다.   
800쪽이 넘는 이 크고 아름다운 책의 소주제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이지만, 이 책은 거시적인 시각(가령 산업혁명의 정의를 다시 내릴 수 있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단히 미시적인 시각으로 위의 의문점들에 힌트 하나를 던져준다. 이를테면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은 당연히 영국으로 가는 물류 운송을 막으려는 조치였지만, 역으로 막 태어나고 있던 서유럽의 면화 산업을, 면화 산업 선진국인 영국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대륙 봉쇄령 기간 중에 프랑스의 면화 산업이 큰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은 어떻게 면화 생산지가 됐을까? 경작 가능한 드넓은 토지와 함께, 강제 노동력(노예)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 면화는 이미 제일 중요한 원자재가 되어 있었고, 19세기 중반쯤에는 영국만이 아니라 서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은 모두 다 면화를 요구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결국 면화 제조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지나갈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결국은 노예들을 임금노동자로 바꿔야 면화 공급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면화의 제국〉 스벤 베커트 지음 김지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그렇다면 제국주의는? 영국도 인도를 처음부터 모두 다 점령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주로 해안가의 거점만 점유하면서 면화를 거래하면 그만이었는데, 결국 가격경쟁을 위해 중간 거래를 없애다 보니 식민지화해버린 것이다. 이런 스토리는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서도 이어진다.
게다가 제국주의가 원자재의 생산지 및 소비지 구실을 모두 한다는 대목이 세계사 책에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의류 위주인 면화 제품을 소비할 곳은 식민지였다. 식민지 자체 내에서 만드는 의류보다 식민 모국의 공장에서 만드는 의류가 훨씬 쌌다. 그러니 시장 구실도 한 것이다.  
이런 긴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텐데, 조금이라도 위의 내용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이런 책이 좀 잘 팔렸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책 소개는 읽고 쓰는 것이다.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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