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권 지폐의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뒷면 바탕에는 별 지도가 엷게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잘 보면 북두칠성을 찾을 수 있다. 북두칠성의 끝에서 두 번째 별이, 실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것까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둥근 원이 여러 개 겹쳐 있는 기구도 보인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 관측기인 혼천의이다. 혼천의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폐에 혼천의가 들어가 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1만원권 지폐에 있는 혼천의는 그냥 혼천의가 아니다. 송이영이라는 조선 시대 과학자가 1669년 발명한 ‘혼천시계’의 일부로 만든 것이다. 혼천시계는 혼천의를 시계와 결합한 기구로 우리나라 독자적인 발명품이다. 지폐에 있는 혼천의의 오른쪽 윗부분에 보이는 톱니바퀴가 시계와 결합된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오른쪽 아래로 돌리면 옅은 색으로 그려진 물체가 하나 보인다. 선뜻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이 물체는 망원경이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운영하는 보현산천문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광학망원경으로 지름이 1.8m이다. 이 망원경은 한국 현대 천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지폐 속 그림의 원본이 된 사진을 찍은 이가 천문학자 전영범 박사이다. 전영범 박사는 해발 1124m 보현산 정상에 천문대가 건설되던 1992년부터 지금까지 보현산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
전영범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
그가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국 최대 망원경을 보유한 천문대에서 25년 넘게 근무한 관록과 전 세계 유명 천문대를 다니며 연구와 사진 촬영을 한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천체사진을 직접 찍는 천문학자는 흔하지 않다.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얻는 자료는 대체로 멋진 천체사진이 아니다. 그래서 천체사진 촬영은 주로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일이다. 그 점에서 전영범 박사는 특별하다. 천체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만 그 천체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찍는 사람은 드물다.

모든 사진에는 사연이 있듯, 천체사진에는 우주의 스토리가 있다. 우주를 찍은 사진은 그냥 봐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보면 훨씬 더 아름답다. 전영범 박사는 천문학 연구와 함께 소행성 120여 개를 발견해 최무선, 장영실, 이천 등 우리 과학자 10명의 이름을 붙였다. 그뿐 아니라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천체사진 대부분을 직접 촬영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다. 물론 그의 사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넘쳐난다. 

기자명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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