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카터 제공빌리카터의 보컬 김지원씨(왼쪽)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기타리스트 김진아씨.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음악적인 당당함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밴드가 여기에 있다. 피 끓는 사람들이 만든 통렬하고도 가식 없는 음악. 그들의 이름은 빌리카터다. 빌리카터는 베이스 없이 드럼과 기타 그리고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원초적이고 단순한 밴드다. 여성 두 명이 이끄는 그들의 라이브는 특유의 폭발력으로 데뷔 후 단숨에 록 음악 신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유럽 각국의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특히 2016년에 발표한 정규 앨범 〈Here I Am〉은 우리 시대에 들을 수 있는 가장 거침없는 록 앨범 중 하나이다. 2011년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친구 사이인 보컬 김지원과 기타리스트 김진아가 의기투합해 만든 빌리카터는 지금까지 정규 앨범 한 장과 EP 앨범 네 장을 발표했다. 보컬을 맡고 있는 김지원씨를 인터뷰했다.

영국에 거주하며 런던에서 버스킹(공연장이 아닌 거리에서 하는 공연)을 1년 가까이 했다고 들었다. 낯선 영국 거리에서의 공연은 빌리카터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영국 버스커들은 주로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데 직업의식도 강하고 연주도 정말 잘한다. 그들에게는 ‘버스킹으로 받는 돈은 내 노동의 대가’라는 당당함이 있다. 우리도 2011년 1년 동안 주말마다 노팅힐이나 브라이턴 해변 같은 곳에서 버스킹을 했다. 공연 중에 새똥도 맞아보고, 한 장소에서 오래 연주해오던 터줏대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어떤 상황에서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정신력 같은 게 생기더라. 지금은 어떤 장소에서건 빌리카터만의 공연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정식으로 초청받아서 영국 뮤직 페스티벌에 다녀오는 상황이 됐다. 기쁘기 그지없다(웃음). 영국은 2017년에 이어 두 번 다녀왔는데 작년에는 영국의 〈리버풀 사운드 페스티벌〉이랑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공연을 하고 왔다. 그사이 아일랜드에 들러 공연을 했고 이후 체코·벨기에 등의 페스티벌에도 초청받아서 다녀왔다.

아시아인 여성 두 명이 프런트인 록 밴드에 대해 유럽 관객들의 시선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동양인 여성 둘이서 프런트에 서서 파워풀한 공연을 하는 밴드이다 보니 아무래도 선입견을 가진 일부 관객들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유럽에서 공연할 때에는 ‘도장 깨기’ 하는 기분이 들어서 나름 쾌감이 있었다(웃음). 해외 특히 유럽 공연에서 가장 한계를 느끼는 부분은 인종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비행기 값이다(웃음).

빌리카터는 특히 공연에서 빛을 발하는 밴드이다. 공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집중력이다. 무대에 올라가서는 곡을 만들 무렵 가졌던 생각이나 감정 등에 충실하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한다. 비슷한 의미로 관객들에게도 편한 상태로 공연을 보라고 말한다. 누워서 보고 싶으면 누워서 보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 마시면서 보고(웃음). 관객도 우리도 가장 자연스럽게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최고의 공연이 된다.

빌리카터의 음악은 보컬 김지원과 더불어 기타리스트 김진아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김진아의 기타에 대해서 말한다면? 진아에게도 했던 말인데, 그와 같은 기타 연주는 국적도 성별도 막론하고 진아만 할 수 있다. 굉장히 솔직하고 힘 있으면서 위태로운 매력이 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 다른 친구들이 다들 손가락 자랑(기교를 화려하게 뽐내는 것)을 해도 진아의 연주는 확실히 달랐고, 그들 모두를 비웃듯 제멋대로였다.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진아의 기타 연주에 반했다.

강렬하게 분출하는 에너지가 특징인 빌리카터가 2017년 12월 연달아 발표한 두 장의 앨범들에선 전작에 비해 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듯한 음악을 들려줬다.

몇 년 전에 친한 친구의 남편이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사건 후 친구는 충격과 슬픔에 빠져 홀로 어린아이를 키워야 했다. 음주운전 사망 사고 가해자를 오히려 감형해주는 판결로 인해 친구는 가해자와 기나긴 법정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저녁 시간만 되면 아빠를 기다리며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세 살 아기에게 어떻게 아빠의 죽음을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엄마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17년에 발표한 앨범 〈그린〉에는 그 당시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빌리카터도 경력이 쌓이면서 음악 안팎으로 여러 변화를 겪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음악은 어떨 것 같은가. 조금 더 평화롭고 사랑이 가득한 음악을 하고 싶은데 내 안에 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웃음). 아직 말하고 싶은 것도 많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인 것 같다.

지구력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한국에서 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다. 주위를 봐도 좋은 음악 하는 많은 동료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감정이 격정적인 시기에는 내게 왜 음악을 하느냐고 물으면 ‘음악에 대한 욕구를 배설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구력 싸움이다. 지쳤을 때는 회복을 잘 하는 것이 좋은 음악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 힘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 음악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 최근 한 동료로부터 ‘느슨하지만 무한한 연대’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앞으로 음악하는 좋은 동료들끼리 서로 토닥토닥 격려하며 가고 싶다.

그가 고등학생 때 썼다는 ‘사창가에 핀 꽃’은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빌리카터의 앨범에 실렸다. 1인칭 시점으로 쓴 가사에서 빌리카터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척 도발적이면서 아프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쯤 시스템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부디 빌리카터 같은 개성 있고 훌륭한 음악을 하는 밴드가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여긴 꽃이 필 수 없는 곳/ 여기선 뭐든 곧 시들어버려/ 어느새 나는 이곳에 어울리는/ 원하지 않던 모습이 되었어/ 나는 창녀야/ 아이를 데리고 지나는 어른들은/ 아이의 눈을 가리지/ 우리 아가 깨끗한 것만 보고/ 나쁜 것은 보지 말아라/ 내게도 당신 같은 엄마가 있었어(2017년, 빌리카터의 〈오렌지〉 앨범 중 ‘사창가에 핀 꽃’ 가사 일부).”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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