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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법’은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나

2019년 01월 21일(월) 제592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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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 산안법은 정부 관계자조차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법이었다. 입법 과정에서 경영계의 참여를 폭넓게 열어주고, 몇 가지 계기가 겹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냈다. 의회의 속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지난해 12월26일 오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개정 산안법)은 곧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상태로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이날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개정 산안법을 받지 않기로 했다.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는 논의가 제법 진척이 되었으나, 상임위 합의도 따라서 불가능해졌다.

개정 산안법은 2월부터 고용노동부가 준비에 들어가 10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 발의 법안이다. 2월에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김영주 의원의 한 참모는 이렇게 회상했다. “심하게 말해서 ‘될 리가 없는 법’이었다. 법안을 준비하면서도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았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로 논의가 진척되기는 했지만, 결국 마지막 고비를 못 넘는구나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정부에서 법안을 준비하던 실무자조차 ‘될 리가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법은 왜 엎어질 뻔했고, 막판에 기적적으로 부활했을까. 일련의 입법 과정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7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오른쪽)이 포옹하고 있다.

개정 산안법은 산재의 형벌을 극적으로 강화하지도 않았고, 산재 위험이 있는 업종에서 하청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강력하고 근본적이며 당장 세상을 바꿀 대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첫눈에 이 법은 물러터져 보인다. 그러나 노동부에서 이 법안을 만지던 당사자들은 개정 산안법을 ‘조용한 게임 체인저’라고 생각했다. 산재 문제에서 이 법이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핵심은 제63조였다.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건조하고 복잡한 문장이 왜 중요한가? 기존 산안법 체제에서,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나면 책임은 기본적으로 하청이 졌다. 그러니 원청은 위험 자체를 쪼개서 하청에 떠넘길 수 있었다. 하청은 이렇게 전가된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위험을 그저 짊어지고 간다. 전가된 위험은 언제고 터진다. 그게 지하철 스크린도어든 발전소 컨베이어벨트든 피할 수는 없다. 기존 규칙은 이 ‘위험 전가’를 사실상 조장했다.

개정 산안법 63조는 이 기본 규칙을 바꾼다는 의미다. 원청의 사업장에서 산재가 나면 원청도 책임을 지게 된다. 원청은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다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책임을 벗을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가 금지되지는 않는다. 다만 더 비싼 선택이 된다. 공짜이던 ‘위험 전가’에 이제는 가격표가 붙었다. 바뀐 규칙에 따라 참가자들은 선택을 재검토해야 한다. 원청은 차라리 직접고용을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하청을 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63조는 이 선택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다. 다만 선택의 비용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물릴지를 바꾼다.

이렇게 해서 63조는 자원 배분의 규칙을 바꾸는 조항이 된다. 입법이 만들어내는 진정으로 중대한 변화는 자원 배분의 규칙을 조정할 때 일어난다. 이런 조항은 조용하고 물러터져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대단히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개정 산안법을 ‘게임 체인저’로 만들어주는 것이 이 63조다. 

자원 배분의 규칙을 조정하는 일은 정치의 본령이다. 그리고 입법부는 자원 배분의 규칙을 조정할 권한을 보유했기 때문에 정치의 중심이 되는 기구다. 행정부는, 대통령조차도, 입법부가 정하는 자원 배분의 규칙 안에서 일한다. 이제 개정 산안법이 ‘될 리가 없는 법’으로 불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의회는 여러 사회집단들이 두루 대변자를 보내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자원 배분의 규칙을 바꾸는 데 저항하는 사회집단의 대변자도 당연히 들어와 있다. 그래서 의회의 본령에 가까운 이런 법일수록 더 잘 엎어진다.

“공청회 다섯 번 해야 할 중요 사안”

지난해 12월26일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자유한국당 이장우 의원은 63조가 갖는 파괴력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것은 공청회를 다섯 번 정도는 더 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에요.” 이번에 63조를 빼고 가자는 취지다. “위원장님(같은 자유한국당 소속 임이자 소위원장), 이 문제는 우리 당내 의원총회 거쳐야 할 사항이에요. 이 중대한 법안은 당연히 의원총회에 회부를 해야지.” 법안이 합의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었으니, 의총을 거치자는 말은 이 흐름을 막겠다는 취지다. 일반적인 법안은 상임위가 자율성을 발휘하지만 중대 법안은 당 차원의 판단을 거친다. “이건 의총 사항이다”라는 말은 판 깨기 시도인 동시에 정론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임이자 의원(가운데)이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김용균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효과가 있었다. 이날 오후 자유한국당 의총은 합의 결렬을 선언한다. 개정 산안법이 제안하는 자원 배분의 규칙 변경은 자유한국당이 노선상 받기 어렵다. 오히려 놀라운 일은 이 법안이 의총 이전에 합의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 그리고 의총 이후 반전이 일어나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법안 준비 과정에 관여한 전형배 교수(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안을 만들어서 국회로 넘긴 11월만 해도 이건 어렵다는 기류였다. 경제가 어려운데 새로운 규제를 도입한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어서 민주당에도 동력이 없었다. 그런데 김용균씨 유가족들이 국회를 움직여주면서 일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김용균씨와 유가족이 만든 법이다.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이 상징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본다. 굉장히 급박하게 흐름이 요동쳤다.”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될 리가 없는 법’을 일단 문턱까지 끌어 올렸다. 여기에 중요한 우연이 겹친다. 자유한국당 환노위 간사는 임이자 의원이다. 임 의원은 한국노총 출신으로, 노동자 보호와 산재 문제에 대해 비교적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이장우 의원이 “의총을 거쳐야 한다”라고 제동을 걸 때, 그 대상은 민주당 의원들이 아니라 같은 당 임이자 소위원장이었다. 12월26일 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당 간사가 모여 이견을 조정하는데, 63조는 살리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임 의원은 이 핵심 조항을 흔들 생각이 없었다.

자유한국당 의총 결과에 따라, 3당 간사 합의는 일단 무위로 돌아갔다. 여기서 다시 결정적 반전이 나온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조국 민정수석 국회 출석과 산안법 개정안 통과를 연계시킨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최대 관심사는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개정 산안법이 카드로 쓰였다. 청와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12월31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다. 이날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경영계가 결사항전 태세였다면 자유한국당이 개정 산안법을 카드로 쓰기는 어려웠다. 전형배 교수는 “경총이 반대한 걸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세게 막지 않았다. 경총에서는 화학물질 관리라거나 자기 사업장 밖의 안전관리 문제를 민감해해서 그건 정부안에서 후퇴했다. 경총이 논의 과정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반대가 크지 않았고, 물밑에서는 공감대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산안법 입법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제대로 막고 싶었다면 손경식 경총 회장이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몇 바퀴 돈다. 그러면 자유한국당도 이걸 카드로 못 쓴다. 이번엔 그런 게 없었다.”

‘노무를 제공하는 자’라는 문구의 의의

개정 산안법에는 좀 더 미묘하고 장기적인 ‘게임 체인저’가 하나 더 숨어 있다. 개정 산안법 제1조는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쓴다. ‘노무를 제공하는 자’는 ‘근로자’보다 넓은 표현이다. 배달 앱 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근로자’엔 들어가지 않지만 ‘노무를 제공하는 자’에는 들어간다. 배달 앱 노동자가 오토바이를 타다 다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직접고용을 염두에 두고 만든 노동법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개정 산안법은 ‘노무를 제공하는 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런 문제를 다룰 단초를 마련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투표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이것은 보기보다 훨씬 중요한 변화일 수 있다. 국회의 입법 과정은 전례를 쌓아 올리는 싸움이기도 하다. 개정 산안법이 이 개념을 도입하면서, 이후 다른 노동관계법을 논의할 때도 노동자 개념을 폭넓게 잡을 근거가 마련되었다. 12월21일 환노위 공청회. 권혁 교수(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개정 산안법에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근로계약 관계만 보호하는 전통적 노동법의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일하는 사람(이후 논의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표현이 바뀐다)이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이고, 향후 노동법의 미래를 암시한다.” 

세상의 변화와 기존 제도는 늘 파열음을 낸다. 제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속도대로 속속 바뀔 수는 없다. 의회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가며 변화된 세상에 제도를 맞춰나간다. 이 과정은 속 터지게 느리기도 하고 실패할 때도 많다. 

산안법 개정 과정은 이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위험을 하청으로 쪼개 전가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이 달라졌는데, 산재를 다루는 제도는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간극 덕에 원청은 안전에 과소 투자해 초과수익을 올렸다. 개정 산안법은 이 간극을 따라잡으려는 시도였다. 동시에, 노동시장이 더 이상 직접고용 중심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현실에 대응할 첫 교두보이기도 하다. 몇 번이고 엎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이 법은, 입법 과정에 핵심 이해 당사자인 경영계의 참여를 폭넓게 열어주면서 최대 위험요소를 일단 제거했다. 거기에 자유한국당 환노위 간사가 당의 노선과 달리 이 법에 전향적이었다는 우연, 김용균씨 사망 사건이 전국적 이슈가 되었다는 우연, 그리고 당시 자유한국당이 원내 전략상 더 우선순위 높은 요구 사항이 있었다는 우연이 연속으로 겹쳤다.

구조 변동이 가하는 제도 변화 압력에 일련의 돌발 변수가 한데 뒤엉키며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뽑아낸다. 의회라는 묘한 기구의 속성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건도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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