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균이 엄마’ 김미숙씨(49)는 난생처음 국회를 찾았다. 스스로를 “집과 직장밖에 몰랐던 평범한 아이 엄마”라고 칭하는 그는 국회 복도에서 성탄절 전야를 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난해 12월24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개정 산안법)의 통과를 부탁하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을 오가는 의원들에게 일일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흘 뒤 극적으로 개정 산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김씨는 해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서울과 태안을 오가며 명확한 진상 규명과 철저한 책임자 처벌, 용균이 동료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1월11일 끝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는 별개로, 유가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구조적인 사고 원인을 밝히고 근본적인 사고 방지 대책을 세우기를 바란다.  
1월8일 충남 태안군 보건의료원의 빈소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를 만났다. ‘내 아들 용균이’가 죽은 슬픔을 ‘용균이 또래 청년들’에 대한 걱정으로 승화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대답은 아직 아들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이유와 맞닿아 있었다.
 

 

ⓒ시사IN 신선영김미숙씨는 “나는 가진 걸 다 잃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되겠기에 나섰다. 이 고통을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서울 국회와 태안 빈소를 오가면서 산안법을 개정해달라고 했는데요. 28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법인데, 이걸 ‘내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 버거움보다 아들을 잃은 한이 훨씬 더 컸습니다. 이전에 개정안이 제때 통과됐더라면, 우리 아들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 고통을 제 선에서 끝내고 싶었습니다.  
고통을 끝낸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찾아가서 작업장을 보니까 다른 애들이 일하는 환경도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부모들은 그곳이 좋은 직장인 줄 알고 보내잖아요. 제가 용균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얼마 있으면 또 사람이 죽어나가고, 또 다른 부모가 저처럼 아픔을 겪고…. 이 죽음의 고리를 끊고 싶어요. 이건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두렵거나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는지요?  
저는 가진 걸 다 잃었잖아요. 애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걸 잃었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한들 기쁘지도 않을 겁니다. 저를 위해 산다는 것보다 이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되겠기에 나섰습니다. 하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거니까.  
그동안 왜 산안법이 개정되지 않았다고 보나요?  
용균이가 죽기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죽음은 조용히 묻혔어요. 그때 조용히 끝났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용균이의 죽음으로 이번에는 나라가 좀 제대로 고쳐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이들과 달리 어머니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아마 그분들도 ‘댁의 아들이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저도 그랬어요. 사고 소식을 전해주며 회사 사람이 ‘용균이가 착실했는데 고집이 세서,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그런가?’ 했어요. 부모 앞에서 어떻게 죽은 자식을 탓하는 말을 할까 싶으면서도요. 주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네 탓’이라고 하면 대책이 안 세워져요.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변에서 나서서 이건 잘못된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용균이가 피켓을 든 사진도 있었고요.  
피켓을 든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입사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걸 들었을까, 얼마나 거기서 헤어 나오고 싶었으면 저 피켓을 들었을까…. 저한테 이토록 소중한 아이가 저렇게 휘둘리고 내몰리고,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일했다는 게 아직도 너무 가슴 아픕니다.  
피켓 사진도 어머니의 원동력 중 하나였나요?  
그런 용균이의 모습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동료들이나 시민단체도 저희를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도움이 없었으면 싸우지 못했을 겁니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12월18일 각계각층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용균씨를 추모하며 컵라면을 앞에 놓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래서 개정 산안법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기를 바랐나요?  
저는 원청(한국서부발전)이 우리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죽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잖아요. 개정 산안법에는 원청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용균이의 동료들이 정규직이 되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가기를 바랐고요.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어땠는지요?  
기뻤죠. 당시에는 사정을 잘 몰랐으니까. 그날 법이 통과되고 밤늦게 서울에서 태안 빈소로 내려왔는데, 용균이 동료들이 풀이 죽어 있었어요. ‘개정된 법에는 용균이와 우리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큰 법이 통과됐으니까 어느 정도 일이 해결됐다고 생각할 텐데 어쩌면 좋으냐’라고 했습니다.  
개정 산안법에는 위험 업무에 대해 외주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주 금지 대상은 도금작업 등 종전대로 22개 기업, 852개 사업장이다. 여기에 발전소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 산안법에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법에 비록 용균이 동료들이 포함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혜택을 받더라고요. 추모제에 가면 사람들이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와요.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헛수고는 아니었구나’ ‘그래도 많은 사람한테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조금 위로가 돼요.  
이전보다 한 걸음 나아간 법인 건 분명하니까요.  
산안법이 개정된 건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용균이와 동료들 처지에서는 당장 별반 달라진 게 없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가장 바라왔던 사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은 아직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정안이 통과돼버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만남을 제안했는데요.  
처음에는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대통령을 만나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왜 만나자고 하는지 먼저 여쭤봤는데, 위로를 하시겠다는 거예요. 저는 단순한 말뿐이라면 만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산안법이 개정된 이후 많은 분들이 이제 ‘대통령만 만나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신 제안에 쉽게 응할 수가 없어요. 만나고 나면 정말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보일까 봐서요.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서 아들 잘못이 아닌 회사 잘못이라는 점을 밝히고 회사로부터 사과를 받을 때까지는, 끝낼 수 없습니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19일 김용균씨 추모행동의 날 행사에서 세월호 유족 권미화씨(아래 왼쪽)와 김미숙씨가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김씨가 바라는 진상 규명은 단지 사고의 표면적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용균이가 ‘언제 어디서 사고를 당했는지’가 아니라 애초에 ‘왜 어둡고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는지’다. 용균씨가 속했던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작년에만 28차례에 걸쳐 안전설비 개선을 요구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3억원이 든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했다. 아들을 죽인 것이 단순한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라 원청-하청으로 나뉜 구조 때문이라고 어머니가 보는 까닭이다.
 
어머니가 지금 겪는 과정을 이미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나 제주 실습생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도 거쳐왔잖아요. 그분들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었나요?  
지금도 정말 쉽지 않게 싸우고 있더라고요. 저도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분들도 원하시는 건 단 하나, 진상 규명이잖아요.  
저는 그분들보다 형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해오셨는지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걸 보면서 저 나름대로 옳은 길을 가야 되겠다, 어떻게 하면 옳은 길을 갈 수 있을까 생각도 할 수 있고요. 그분들이 표지판 구실을 해주는 거지요.  
어머니도 또 누군가에게 표지판이 될 수 있겠군요?  
저도 어떤 게 곧은길인지 잘 모릅니다. 그냥 생각해서 옳은 길을 택하려는데,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가게 될까 봐 걱정도 돼요.  
이런 모습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겹쳐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전태일, 그분이 자신을 불살라서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말한 정도만 알아요. 전태일의 어머님이 이소선 여사라는 건 정말 몰랐거든요. 제가 이소선 여사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습니다. 먼저 간 아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그쪽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찾아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저는 그분이 왜 그랬는지 압니다. 자식이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 아들이 저보고 그런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면 제가 그렇게 하기를 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고 행동에 나서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요.  
저는 제가 특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아이가 피켓을 들었고 제일 험악한 곳에서 죽었고, 이런 점들이 저를 나서게 합니다. 이렇게라도 나서지 않으면 마치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한테 저처럼 깊은 한을 만들지 말라고, 자식들이 일하는 곳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똑바로 알아보고 내보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냥 일단은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용균이가 살아 있고 제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바로 데리고 갔을 거니까요. 그런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용균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거지요?  
우리 아들은… 이미 죽었어요. 이미 죽었는데, 그래도 아들이 남긴 숙제가 있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균씨가 낸 숙제를 다 하면, 용균씨와 어머니가 나중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그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다른 사람들이 용균이를 통해서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요,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조금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거면 됩니다.  
사람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봐주기를 바라세요?  
저를 보고 ‘아, 우리도 할 수 있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두려워하지 말고 좀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앞장서서 해준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준다면, 조금이라도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 사회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도 어두운 면을 좀 보고, 사회를 바꿔보자고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서 우리나라가 좀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그 ‘한 사람’ 중의 한 명인 건가요?  
네, 저는 이렇게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명 태안·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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