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인턴·레지던트의 부모들이 조를 짜서 간식을 넣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명 대학병원일수록 부모의 ‘뒷바라지’가 극성이라고 한다. 대학 공부 마치고 월급도 받는 멀쩡한 성인에게 부모가 간식 당번이라니. 놀라는 내게 지인은 “유명 의대 다닌 잘난 자식이라 더 ‘이유(젖떼기)’를 못 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병원 근무가 바쁘고 힘들다지만 그대로 받아먹는 자식들은 또 뭔가, 싶었다.

대학생인지 유치원생인지 혀를 차게 만드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학점을 놓고 부모가 교수에게 따지거나, 심지어 “아이가 오늘 아프다”며 부모가 강의실에 대신 나오기도 한다는. 그나마 이제는 법에 저촉되니 대놓고 ‘돈질’은 못하지만 강사에게 교묘하게 회유와 협박을 해오는 학부모도 있단다. 당장 신고 감이다.

‘남의 기준’으로 인생을 ‘준비’만 하는 엄친아들

ⓒ박해성

대학도 이런 부모들의 설레발을 암암리에 이용한다. 입학식을 전후해 이런저런 명분의 부모 모임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발전기금 마련을 위한 게 아니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학부모 단톡방도 만들어진다. ‘우리만의 리그’에 끼었다고 자부하는 유난스러운 학부모들은 강의 정보, 학점 정보를 나누다 이후 취업, 유학, 로스쿨, 기타 등등 정보까지 챙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머리가 굵으면 부모의 관심과 관여를 적극 마다한다는 것이다. 짜증 전략이건 무시 전략이건, “감사했다. 이젠 제가 하겠다”라는 효도 전략이건 말이다. 문제는 자라는 내내 지나치게 ‘관리’받아 천지분간을 못하는 아이이다.

나이로는 성인인데 초등학생 수준의 돌봄을 ‘당연히’ 받는 모습을 본다. 끼니 챙기기, 세탁물 처리, 방 정리 같은 기본 생활조차 스스로 하는 게 없다. 식당에서도 “엄마, 물~” 하는 ‘어른이’들이다. 수강 신청·학점 관리에 부모가 개입한다. 입시 학원 선생님을 다시 찾아와 “쌤, 엄마 전화 받으셨죠”라며 대학 과제가 어렵다고 징징대거나 무슨 과 무슨 시험 노트를 구해달라는 대학생도 있다.

대학 가는 게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원하는 대학에 가면 할 일 다 하는 것처럼 키워져온 아이일수록 좌절과 부침에 면역이 없다. 나잇값을 못한다. 그 뒤에는 자녀의 성취에 ‘몰빵’하며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모가 있다. 아이가 자라면 기운 달리고 능력도 달려 적당한 선에서 보호자 노릇을 접게 되건만, 이 ‘이글이글 장르’의 부모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 불러다 호구조사를 하고 미팅 상대 뒷조사까지 할 정도라니. 미행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성인인 자녀의 여행 계획이나 맛집 탐방 등 주말 동선을 짜주며 ‘스트레스 관리’까지 해준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즉에 했어야 할 고민을 한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나는 뭘 좋아하지? 뭘 할 수 있지? 나는… 누구지? 그 답을 찾아 다시 도서관으로 고시원으로 유학원으로, 때로는 ‘이상한 교회’로 향한다.


지난 학기 학점이 좋지 않다고 우울증 걸린 대학생. 면접 학원 한번 안 다녀봤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되었다며 면접을 망설이는 취업 준비생, 회사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다른 학위나 자격증이 여러 개 있어야 한다고 믿는 엘리트 신입 사원의 소식을 들으면 답답하다. ‘부모 주도’로 살아온 엄친딸, 엄친아일수록 혹시라도 대접받지 못할까, 불리할까 조바심치며 더 더 더 ‘스펙’ 쌓기에 매달린다. 그것밖에 안 해봐서 그렇다. 언제까지 ‘남의 기준’으로 인생을 ‘준비만’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부모 품에서, 부모 관리로.

기자명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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