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카카오봄(Cacao Boom)은 초콜릿 전문점이다. 카카오봄을 운영하는 고영주 대표는 한국인 ‘쇼콜라티에’ 제1호다. 1999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마쳤다. “쇼콜라티에(Chocolatier)는 초콜릿 전문 기술자, 또는 초콜릿 장인의 가게를 말해요. 파티시에(Patissier:제과사)보다 전문적으로 초콜릿을 다루는 제과사라고 보면 되죠. 저는 ‘초콜릿 기술자’라고 부르는데, 아무도 따라 하진 않네요.”
고 대표는 벨기에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의 초콜릿 담당자로 일했다. 호텔 양식당과 제과 부서에서도 쇼콜라티에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을 때였다. 이후 초콜릿에만 전념하고 싶어서 초콜릿 공방을 열었고, 2006년 서울 서교동에 카카오봄 첫 매장을 오픈해 오늘에 이르렀다. 2017년 벨기에 아스트리드 공주가 내한했을 때, 초콜릿의 본고장에서 온 방문객을 위해 초콜릿 디저트를 담당한 이가 고 대표였다.
“초콜릿은 카카오나무의 열매인 카카오빈으로 만들어요. 카카오빈은 꽃, 풀, 흙, 나무 등 갖가지 향과 풍미가 있는, 쓰고 떫고 신 열매죠. 아메리카 아즈텍 사람들이 이걸로 음료를 만들어 마셨어요. 스페인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강장제에서 최음제 이미지까지 살짝 가진, 이국적인 음료로 자리를 잡습니다. ‘악마의 음료’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초콜릿은 설탕과 손잡고 인기 있는 음료로 퍼져나갔다. 1825년 네덜란드에서 물에 잘 풀어지는 코코아 분말이 개발되었고, 휴대가 간편한 판형 초콜릿도 잇따라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초콜릿에 고운 헤이즐넛 가루를 섞은 ‘잔두야’가 태어났고, 스위스에서는 분유를 넣은 밀크초콜릿이 개발된다. 진화를 거듭한 초콜릿은 1912년 또 다른 획을 긋는다.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 장 노이하우스 2세가 ‘프랄린(Pralines)’을 만든 것이다. 프랄린은 부드러운 질감을 자랑하는 한입 크기의 벨기에 전통 초콜릿이다. 프랑스어로는 ‘봉봉 쇼콜라’. 고 대표는 1990년대 후반 벨기에에서 이 프랄린에 사로잡혔다. 그는 한국에 제대로 된 초콜릿을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초콜릿은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음식이지만, 초콜릿과 한국의 인연은 생각보다 훨씬 길다. 개항 이후 조선 사람들은 코코아·홍차·커피를 묶어 서양 음료 삼총사로 여겼다. 하지만 이는 대도시 일부에 국한한 유행이었고, 서민 대중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식민지 시기에는 모리나가 제과, 메이지 제과 등 일본 제과회사의 양산 초콜릿이 초콜릿의 거의 전부였고, 해방이 되자 미국 대기업의 양산 초콜릿이 미군 주변, 이른바 ‘양키 시장’을 통해 흘러나왔다. 한국 제과업체는 1960년대 말에 초콜릿 양산을 시작했다.
초콜릿은 카카오빈에서 얻은 지방인 카카오버터, 역시 카카오빈에서 얻은 고형분인 카카오매스, 그리고 설탕 이 세 가지 원료가 기본이다. 값싼 양산 초콜릿 또는 유사 초콜릿에는 식물성유지, 레시틴, 합성착향료 따위가 잔뜩 끼어들어 있다. “초콜릿이 크레파스 씹는 것 같아서 싫다, 달아서 싫다는 건 유사 초콜릿한테 어울리는 소리예요. 정말 좋은 초콜릿은 위 세 가지 원료에 기술자의 공력만 들어가요. 첨가물을 섞지 않은 초콜릿의 녹는점은 사람 체온과 거의 같아요. 입속에서 사르르 풀리며 사람의 몸을 간질이죠. 또 그냥 달기만 한 게 아니에요. 카카오의 다채로운 풍미와 함께 번지는 달콤함이 있어야 정말 초콜릿다운 초콜릿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기술자는 ‘손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람
‘제대로 된 초콜릿’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결국 ‘맛의 경험’이 중요하다. 좋은 음식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용감하게 가성비의 선입견을 벗어던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프랄린의 경우 한입 크기 10g쯤의 초콜릿 안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런 만큼 작업이 섬세하고 까다롭다. 숙련된 기술자라도, 순간순간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모르면 크기와 부피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같은 가격이라도 부피를 키운 과자류, 빵류에는 기꺼이 5000원대 가격을 받아들이면서 한입거리 과자가 2000~3000원이라면 ‘뭐가 이렇게 비싸’라는 말이 나온다. 고 대표도 그런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초콜릿은 음식보다는 ‘포장’이다. 남에게 선물이라고 내밀면서 ‘나는 이만큼 고급스러운 취향이 있다’를 단박에 드러낼 포장 디자인을 뽑아내지 못하면 애써 만들어봐야 팔리지 않았다. “어느 날 깨달았어요. 품질보다 포장에만 신경 쓰다가 점점 늪에 빠지고 있구나. 진득하게, 뜸을 들여야 하는 게 이 작업인데, 겉보기에만 치중했구나. 이젠 중심을 잡았어요. 한 명씩, 두 명씩 내가 만든 초콜릿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나타나더라고요. 허깨비 같은 ‘트렌드’가 아니라 역시 ‘기본’과 ‘본질’이었어요. 앞으로 10년쯤 뒤엔, 내 기술이 정당한 보상과 평가를 받는 날이 오겠죠?”
그는 부동산의 압박으로 매장 접기를 수없이 경험했다. 트렌드의 주기는 해마다 짧아졌고, ‘뜨다’와 ‘죽다’가
동전의 앞뒤처럼 붙은 세상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 틈틈이 사회학자 정은정씨, 작가 엄기호씨 등을 카카오봄 매장에 초대해 아침마다 ‘주독야경’ 강의를 열었다. 이때 유행이나 마케팅을 좇다가는, 불안감만 커질 뿐 자기 스타일을 만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기술자는 ‘손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가슴에 남았다. “카카오봄의 봄(Boom)은 네덜란드 말로 나무예요. 한국어로 ‘봄(春)’이라고 생각해주셔도 좋아요. 제가 처음 선보인 벨기에 초콜릿이 봄이라면, 초콜릿과 짝인 젤라토(이탈리아 전통 아이스크림)는 여름이에요. 뜨거운 초콜릿과 한 벌이 되는 브뤼셀 와플은 가을이죠. 가장 고전적인 과자 셋이 봄여름가을이 되어 겨울을 나면서 사계절이 완성돼요. 이게 카카오봄의 스타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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