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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신랄한 마영신 작가의 만화 세계

2019년 01월 30일(수) 제593호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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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영신 작가가 연재 중인 <아티스트>는 예술가들의 세계를 그린 만화다. 데뷔 후 12년 동안 작가가 보고 듣고 접한 별의별 경험이 녹아 있다.

마영신 작가가 머리를 기르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어깨를 덮을 정도로 장발이 되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뒤에서 말이 들렸다. “머리 잘라 개××야.” 돌아보니 누군가 통화 중이었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지만 그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머리 긴 남성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실감했다. 최근 그가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아티스트>에 같은 장면이 나온다.

ⓒ시사IN 신선영
2007년 데뷔한 마영신 작가(위)는 <남동공단> <엄마들> <19년 뽀삐> 등을 그렸다.


웹툰 <아티스트>는 제목대로 예술가들의 세계를 그린 만화다. 지하철에서 겪은 일뿐 아니라 데뷔 후 12년간 작가가 보고 듣고 접한 경험이 농축되어 있다. 극중 이런 대화도 실화다. “작업이 잘되어 가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화가이자 시간강사인 등장인물이 답한다. “작업은 무슨. 노가다냐? 아트지.” 21세기 예술가들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까 싶지만 실제 작가가 들었던 말이다. 소설가 신득녕과 화가 곽경수, 뮤지션 천종섭이 주요 인물이다. ‘오락실(남자 예술가들의 모임)’ 멤버 중 유일하게 잘 ‘안 나가는’ 세 명으로 모두 40대다.

‘들키고 싶지 않은 인간들의 가장 지질한 모습을 보는 사람까지 부끄러워질 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 만화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그간 트랜스젠더, 장애인, 장년층 여성, 반려견까지 주인공으로 다뤄왔다. 작가를 자주 수식하는 단어는 ‘사실주의’ ‘리얼리즘’ 따위다. 이번에는 취재가 많이 필요 없을 만큼 익숙한 세계를 그렸다. 그만큼 신랄하다. ‘어린이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예술가들의 욕망이 펼쳐진다’는 웹툰의 소개 글대로 풍자에 가깝다.

극중 예술가들처럼 마 작가의 작업실도 그의 집이다. 서울 서교동에 산 지 2년 반이다. 작업실을 찾은 날, 그가 손수 원두커피를 갈아주었다. 스피커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해 보였는데 보통은 귀찮아서 손님이 올 때가 아니면 내려 먹지 않는다고 했다.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자 ‘사실주의’와 친한 작가답게 실제 ‘작업용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윗머리와 아랫머리를 각각 질끈 묶었다. 책상 위는 어수선해 보여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휴지에 검은색 잉크가 배어 있었다. 펜촉에 잉크를 찍어 만화 원고지에 작업하는 방식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자로 긋고 나면 잉크가 묻어 매번 닦아주어야 한다.

연재 중인 웹툰 가운데 썩 좋은 성적은 아니다. 다만 마니아들이 있다. 마 작가는 주로 예술계 종사자들일 거라 짐작한다. “만화가 어렵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보다는 주 독자층인 10대에게 생소하게 느껴져 그런 것 같다. 3040 세대가 볼만한 만화도 있어야 한다. 어쨌든 (연재의) 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잘 못 나가는) 예술가들의 일상은 자주 한심하다. 잘된 동료를 폄하하고, 뜨면 변할 것 같은 동료를 점친다. 다른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예술을 주제로 논쟁하다 마음이 상하고, 잘된 동료를 질투하다 결국 싸움으로 번진다. 반대로 세상이 예술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도 보여준다. 되도록 싼값에 ‘후려치려는’ 태도와 각종 문화지원 사업 안의 권력관계도 다루고 있다.

돈은 못 벌고 힘든데 자의식 높은 사람

스물다섯 살부터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별의별 인간’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발견한 모순을 만화에 담았다. “돈은 못 벌고 힘든데 자의식 높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자기 만화가 예술인데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울리던 동료가 잘되었을 때 질투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마 작가도 경험했다. <엄마들>을 연재하며 사정이 좀 나아지자 수군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스스로는 특별히 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영신 작가의 작품을 설명할 때 독립만화, 사회성 짙은 만화 등의 수식어가 자주 붙었다. 그는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인디 만화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상업지로 데뷔했고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특별히 사회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관심은 당연한 거다. 뭘 알아야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작품 들어가기 전에 다루려는 인물 군상을 꼼꼼히 취재하는 편이다. 장년층 여성들의 연애와 노동 이야기를 담은 <엄마들>을 할 때는 엄마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 대리운전 기사의 이야기를 만화에 담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최근 발간된 <콘센트>를 그릴 때도 주인공처럼 코 성형수술을 경험한 이에게 부탁했다. “비용을 지불하면 열심히 써준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생생한 표현들도 있다. 한 문장만 건져도 다행인데,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2007년 만화잡지 <팝툰>에 ‘뭐 없나?’로 데뷔한 작가는 <남동공단> <벨트 위 벨트 아래> <삐꾸래봉> <엄마들> 등 출판 만화를 발표했다. 2015년부터 <19년 뽀삐> <연결과 흐름> <콘센트> 등을 웹툰으로 그렸다. 학창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애니메이션 학과를 1년 정도 다녔다. 영화판에서 일한 경험을 만화로 그린 게 시작이었다. 블로그에 올린 만화를 계기로 대안 만화잡지 <새만화책>과 연이 닿았다. <엄마들>을 연재하면서 비로소 만화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발표할 지면이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하루 한두 페이지씩 만화를 그렸다. 병역특례업체의 경험을 그린 <남동공단>도 그렇게 탄생했다. 직접 매체에 이메일을 보내 지면을 내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만화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노하우로 쌓였다. 최근 마영신 작가는 혼자 하는 만화 작업 이외에도 프로듀서 역할에 눈을 떴다. 비트코인 때문에 빚을 진 걸 계기로 닥치는 대로 스토리를 썼다. 창작 욕구가 샘솟았다. 맞는 그림체의 작가에게 협업을 제안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전화위복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아티스트>가 종반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극중 세 사람의 일이 잘 풀려가고 있지만 독자들은 불안하다. ‘팩트 폭격기’인 작가의 특성을 알고 있어서다. 11월에는 5·18을 소재로 한 만화 단행본이 나올 예정이다. 커피 원두를 갈던 작가의 책상에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눈에 띄었다. 그의 만화를 추천했다는 말에 구입했다.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만화’로 소개된다. <아티스트>도 그런 만화 중 하나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과연 누구를 욕할 수 있는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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